“1994년 부도 등 서너번 위기 넘겨”… “주물장인의 피가 2000년 초 다시 불러”
“언론 보도로 인지도 급상승, 해외서도 인기“…“직거래로 회사 이익 고객 환원”

107년 역사, 4대째 가업 승계, 한국의 대표 노포(老鋪), 정직과 신용으로 고객이 최우선.
모두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안성주물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4대째 안성주물을 잇고 있는 주물장 전수자 김성태 대표를 최근 본지 단독으로 만났다.
-공장이 다른 주물공장보다는 아담합니다.
▲그런가요. 선박이나 발전소 등에 들어가는 제품이 아닌 무쇠가마솥 등 조리기구를 생산하고 있어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됩니다.
-107년 동안 사업을 영위하면서 큰 위기가 많은 것으로 압니다.
▲네, 우선 1953년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버지께서 안성주물을 일시적으로 맡게됐고, 할아버지 친구 분이 안성주물을 경영키로 했습니다. 그 친구 분이 안성주물의 기술과 인력을 빼가면서 첫번째 위기를 맞았죠.
이어 1970년대 군사정부가 실시한 새마을 운동이 두번째 위기였죠. 당시 가가호호 두서너개씩 있던 무쇠가마솥과 조리기구, 식기류 등이 양은솥과 스테인레스 제품으로 대체됐기 때문이죠?
이어 1989년 첫부도를 맞았으나 심각하지 않아 다시 일어섰고, 1994년 두번째 부도는 컸습니다. 안성주물의 소유주가 바뀌었거든요.
안성주물을 포함해 국내 주물업계의 전성기는 1950,1960년대가 아닌가 합니다.
-두번째 부도도 이겨내셨는데요.
▲1989년 부도로 회사를 떠나 대학 전공인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관련 기업에서 근무했습니다. 다만, 두번째 부도로 공장을 임대하고, 안성주물을 재건하려는 부친의 모습에 집안 내력인 주물장인의 피를 2000년 초 다시 살리게 됐죠. 마침 2006년 아버지께서 경기도 무형문화제 45호인 주물장으로 선정되면서 안성주물 인지도가 상승했습니다.
-안성주물이 제 2전성기를 맞은 듯 싶습니다. 언론의 힘도 컸다는 생각입니다.
▲그런가요? 온오프라인 언론사에서 안성주물을 다수 조명했습니다. 이중에서도 2012년대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의 다큐멘터리 ‘백년의 가게’에 안성주물이 방영된 게 결정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방송 자료 준비에만 2개월이 걸렸습이다. 공영 방송이다 보니 안성주물의 역사를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안성등기소 직원의 도움으로 안성주물의 역사를 증명했습니다. 등기소 직원이 할아버지께서 대정 8년(1919년) 일본인으로부터 주물공장을 인수했다는 폐등기부 등본을 찾은 거죠.
내수 시장에서 안성주물의 위상이 올라갔습니다.
최근에는 아리랑TV를 통해 세계에 안성주물이 전파를 타면서 해외 인지도도 상당이 상승했습니다. 이로 인해 안성주물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최근에는 싱가폴에서도 주문이 많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쇠주물 조리기구의 장점을 말씀하신다면요.
▲영국 BBC 방송에서도 보도됐 듯이, 가마솥으로 밥을 하면 우리 몸에 철분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가마솥 등에 녹이 생겨 밥이 푸르스름해져도 인체에는 무해합니다.
이를 감안해 안성주물은 실생활에 쓰이는 조리기구를 만드는데 잡철이 아닌 엄선한 선철만을 재료로 사용합니다.
아울러 용광로 방식으로 쇳물을 생산하는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고요.
-최근 주물압력솥이 인기던데, 무쇠가마솥과 같은 효과를 내나요.
▲주물압력솥을 철정(鐵鼎)이라 부릅니다. 무쇠가마솥과는 다릅니다. 철정은 다이캐스팅 제품으로, 무쇠압력솥이지만 표면에 코팅처리를 하기 때문에 무쇠가 숨을 쉬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무쇠가마솥과는 다른 거죠. 한
철정 업체에서 주물장인 부친에게 광고 모델 제의가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안성주물의 인기 비결을 방송과 언론 매체에서만 찾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성주물은 경기를 타지 않습니다. 전통도 있지만 2006년부터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직거래한 게 주효했습니다.
무형문화제인 주물장이 만든 107년 전통의 역사를 가진 무쇠가마솥을 몇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게 고객 구매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안성주물의 우수한 가성비(가격대비 품질)가 고객이 입을 통해 전국에 퍼진 덕도 톡톡히 봤고요. 도소매 단계를 거치지 않아 유통 비용을 최소하고, 회사의 이익을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경영 방침입니다.
안성주물은 제품을 함부로 만들지 않을 뿐더러 영리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동안 인건비와 원자재 비용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최근 5년만에 가격을 올린 이유입니다.
안성주물의 진심이 고객와 통(通)한 거죠.
-경영 애로도 있을텐데요.
▲여타 뿌리기업들과 대동소이 합니다. 인력이 문제죠. 우리 공장만 보더라도 직원 모두 60, 70대입니다. 제가 올해 54세로 회사에서 가장 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물 업체에 오려 하나요?
종전에는 설과 추석에만 휴무했으나, 요즘에는 주 5일제가 대세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인력이 없다보니 생산력을 높이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뿌리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아울러 뿌리기업이나 뿌리기술전문기업 지정 요건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107년 전통의 안성주묻로 뿌리기업 지정을 신청했으나, 요건을 총족하지 못해 탈락했습니다. 직원 중 대학 금속공학과 졸업생과 함께 부설연구소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입니다. 유명무실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함 만들고 사무실에 명패만 달면 연구소가 되는데 말이죠. 오죽하면 제가 금속공학과로 편입하려고까지 했겠습니까. 이마저도 ‘직원’이라는 조건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안성주물이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의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지만, 뿌리기업 지정에는 거듭 고배를 마시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정을 포기했지만, 뿌리기업 지정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른 애로는 없나요.
▲최근 해외 주문이 늘어 영문사이트 개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디를 찾아봐도 마땅한 지원책이 없네요.
-안성주물의 미래를 말씀하신다면요.
▲살아나기 위해서는 변해야 합니다, 종의 기원의 저가 다윈은 그의 저서에서 “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도, 우수한 종도 아니다, 오로지 변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고 했습니다.
현재 본인이 주물장 전수자지만, 끊임없는 기술과 제품 개발로 안성주물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육성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