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지게와 멈추어버린 기계
아버지의 지게와 멈추어버린 기계
  • 황병성
  • 승인 2019.08.1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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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버지 지게가 창고에 방치되어 있다. 본래 형태를 반쯤 잃어버린 채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 애처롭다. 반평생을 넘게 동고동락했던 지게는 제 역할을 다하고 은퇴한 노병의 신세가 되었다. 힘겨웠던 보릿고개를 같이 넘어왔다. 무거운 짐 속에 함께 지고 날랐던 가정의 애환은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 와 그때가 그리운 것은 허허벌판에 잊혀진 듯한 외로움 때문이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와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아버지의 짐은 늘 허리가 휠 정도로 무거웠다. 그러나 불평 없이 굴곡 많았던 세월의 고개를 숙명처럼 넘어오셨다.

하루하루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단 하나 즐거움은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시고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시는 노랫가락이었다. 얼큰한 술기운에 부르시는 아버지의 노래 속에는 질곡 어린 인생의 슬픔이 묻어났고,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래 속에는 즐거움이 배어났다. 현실을 한탄하는 듯 구슬픔이 더했고,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흥겨움이 넘쳐났다.

보내놓고 나면 길지도 않은 짧은 세월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고 길게 느껴졌는지 허망하다. 자식들은 장성해서 도시로 떠나버렸고, 텅 빈 마을은 외로움에 지친 공허한 파도만 밀려온다. 촌로(村老 )는 끝내 병마로 자리에 누워버렸다.
 
#2.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한 업체에서 잘 돌아가던 기계가 멈추었다. 70을 훌쩍 남긴 백발의 사장님 한숨이 강물처럼 깊다. 한 때는 여러 명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잘 나갔었다. 기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24시간을 돌고 돌았다. 뛰어난 기술도 큰 재산이었다.

사장님은 유년시절 시골에서 상경해 허름한 공장에 사환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소년은 공장 내 허드렛일을 하며 배고픔과 구박을 견디며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기술을 익힌 소년은 성인이 되었고, 작으나마 자기 사업체를 가졌다. 뛰어난 기술 때문에 고객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동종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사업가로 명망이 높았다.

삶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었다. IMF라는 힘든 파고(波高)도 넘어왔기에 넘지 못할 산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태에 뒤처진 안일한 생각이 문제였다. 기술 하나만 믿고 투자를 게을리 했다. 신뢰만 있으면 고객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상인심은 매정했다. 단골들은 새로운 기계를 찾아 떠났고, 새로운 기술을 찾아 떠났다.
 
#3. 노년의 두 인생 단면을 보면 슬프다. 하지만 각자가 살아온 인생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두 노년의 삶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도 전국의 생활 현장에는 삶에 부대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꿈을 다 이루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하지만 주어진 삶을 보람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본분을 다하고 지게를 벗어버린 아버지와 멈추어버린 기계를 보며 한숨짓는 어느 백발 노 사장의 삶이 자꾸만 교차한다. 그들의 삶은 실패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제 본분을 다한 삶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삶은 결코 후회스럽지 않을 것이다.

삶은 선택이다.  사람들은 후회스러운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삶에 충실하고자 오늘도 힘겨운 인생의 챗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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