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좋은 경제학’과 최저임금 인상 주장 해법

황병성 칼럼 - ‘좋은 경제학’과 최저임금 인상 주장 해법

  • 철강
  • 승인 2020.06.1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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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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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향하는 김 씨의 발걸음이 천 근 만근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온몸을 무겁게 짖누른다.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삶은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단한 것일까? 공사판에서 막일도 했다. 삭풍의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대리운전도 해보았다. 하지만 궁색한 살림살이는 나아질 줄 모른다. 세상의 편견이 서럽고, 졸부의 갑질이 서러웠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회한(悔恨)만이 눈처럼 쌓인다.   

세상 한쪽에서 힘겨운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어느 실직한 가장의 단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이 늘었다. 5월에만 73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통계청 집계 후 최대 규모다. 신규 실업자는 당분간 실업급여로 버티겠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그들이 갈 곳은 벼랑 끝이다. 단란한 가정이 무너질 수 있고, 우리 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실업급여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힘든 시기에 한 신간이 해법을 제시한다. 빈곤퇴치 연구로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부부 경제학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메사추세츠 공대(MIT) 교수가 함께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 그것이다. 저자는 ‘나쁜 경제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좋은 경제학’으로 그 해법을 찾고자 한다. 그 핵심에는 경제학과 경제정책에 대한 질문이 자리한다.

저자가 말하는 좋은 경제학은 의문을 제기하는 현상에서 출발하고, 인간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작동한다고 알려진 이론들에 대해 몇 가지 추측한다.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추측을 검증하고 새로운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때로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전면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해법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경제학은 대중 매체에 나와 단정적으로 말하고 예측하기를 좋아한다. 그 예로 아무런 실증 근거도 없이 레스토랑에서 냅킨 위에 그렸던 래퍼 곡선(세율을 낮추면 일할 유인이 커져 세수가 늘어난다는 주장)이나 세금 인하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을 예로 들고 있다. 

경제성장과 불평등 완화, 보편적 기본소득 논쟁, 분열된 사회와 정치, 기후변화의 위기 등은 오늘날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다.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쁜 경제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쁜 경제학에서 간과한 것은 불평등과 사회 균열이었다. 성장을 위해서는 그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좋은 경제학은 나라를 더 부유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김 씨의 삶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불어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 수반(隨伴)이 뒤따라야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저자는 모든 사람이 인센티브만큼이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점을 고려한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존엄을 고려하지 않은 복지정책은 그 정책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외면당하고 실패한 사례를 지적했다. 정부 정책은 돈과 존엄 사이의 인간관계를 핵심적으로 고려해서 설계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재난 지원금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좋은 본보기이다.  

지금은 좋은 경제학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황폐해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있다. OECD는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마이너스 1.2~2.5%로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내년 최저임금을 5.3% 올려달라고 야단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최저임금 삭감이나 최소 동결을 주장한다. 두 주장은 지금 팽팽히 맞서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에 큰 타격을 주었다. 만약 노동계 주장이 관철된다면 또다시 동료 누군가가 해고당하고, 누군가는 폐업할 수 있다. 동료를 거리로 내몰고, 나라의 경제를 흔들면서까지 자기주장만 내세운다면 절대 협치는 될 수 없다. 적절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악화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자신들의 주장이 옳더라도 국가 경제를 위해 한발 양보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지금은 모두 힘을 합쳐 생존에 가치를 두는 것이 좋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올바른 해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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