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虎死遺皮人死遺名)’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인간이 세상을 떠나며 가장 지향하는 목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가 저세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수많은 고인(故人) 중에서 이 세상에서 이름을 남긴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하여 잘못된 삶을 산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살다가 간 사람도 그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제철보국(製鐵報國)과 산업보국(産業報國)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두 분이 영면에 들어갔다. 90세의 일기로 돌아가신 전 포스코 정명식 회장과 95세로 별세하신 김상하 삼양 명예회장의 비보를 접하며 슬픔을 감출 수 없다. 두 사람은 너무나도 가난했던 우리나라를 세계 선진국 대열에 오르게 한 일등 공신이다. 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굵은 땀방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흔적으로 말미암아 고인이 몸담았던 회사가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했고, 그토록 열망하던 제철보국과 산업보국을 마침내 이루어냈다.
포스코 제3대 회장을 지냈던 정명식 전 회장은 ‘영일만 신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고인은 토건부장으로 입사해 포항제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열악했던 토목건설 기술은 제철소 건설에 큰 악재였다. 생전에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그때까지 국내에서 그렇게 깊이 땅을 파본 일이 없었고, 굴착한 곳에 물이 차오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던 상황”이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포항제철 건설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 토목 기술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회고한 말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고인이 생전에 후배들을 위한 선배로서의 조언은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다. “기업이라는 생물도 경쟁에서 떨어지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항상 위기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해서 강화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은 평범한 말일 수도 있으나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파이넥스 기술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위기라는 의식을 갖는 것은 안주하지 않게 하는 명약과도 같다.
김상하 삼양 명예회장은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12년 동안 재임하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묵묵히 실천했다. 외환위기 때 거의 매일 상의로 출근해 한국경제가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특히 당시 자사 임원이 구조조정을 추진하자 “환경이 일시적으로 나빠졌다고 직원들을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며 감원계획을 백지화한 일화는 아직 세간에 회자된다. 그만큼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경영자였다.
두 고인은 공통점은 기업의 영속성을 위한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조언은 지금도 경영자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중요한 교훈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국가는 생전에 김상하 명예회장에는 동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정명식 전 회장에는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이 훈장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았다. 후세 경영자들이 중요한 본보기로 삼아 ‘재계 덕장’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두 고인이 세상에 남긴 것은 이름이다. 육신은 없지만 세상에 남긴 의미 있는 발자취로 이름은 후세에 자주 오르내릴 것이다. 경영자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 성격이 매몰차다고 인식되지만, 그러나 두 고인은 그렇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직원들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 알고 보듬어 주는 따뜻하고 인정 많은 경영자로서 기억한다. 그래서 두 고인이 떠난 1월은 아쉬움과 슬픔으로 부는 허망한 바람이 매몰차다. 편안한 안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