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귀가하지 못한 근로자

황병성 칼럼 - 귀가하지 못한 근로자

  • 철강
  • 승인 2023.09.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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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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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아름답게 이별하고 기억되는지도 중요하다. 얼마 전 고향 친구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열심히 세상을 살았던 친구였다. 사랑하는 첫째 딸마저 앞세우며 상처가 무척 깊었지만 겉으로 내색조차 않던 미소가 포근했던 친구였다. 그녀가 갑자기 직장에서 쓰러진 후 식물이 되어버렸다.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지만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생전 그녀의 바람대로 여러 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하늘나라로 갔다.  

홀로 남은 딸은 깊은 슬픔의 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남김없이 주고 떠난 어머니를 잊지 못해 오래도록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지켜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식은 어머니와 이별의 끈을 놓지 못했다. 남겨진 자의 슬픔은 그렇게 가슴깊이 사무쳤고,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이렇듯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의 말 한마디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귀가하지 못한 직장인이 그 예이다. 가족의 곁으로 퇴근하지 못한 근로자가 올해 상반기만 289명이나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직장에서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1년 전보다 29명이 줄었다고 하지만 위안이 될 수 없다. 관련법도 사후약방문식이다. 예방 성격이 아닌 처벌 성격이 더 짙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실시 중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도 아직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는 기업을 대상으로 위험성 평가와 매월 두 차례 실시하는 현장 점검 등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모르는 업체가 많고 소규모 업체들에는 동떨어진 시스템으로 지적 받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 제도가 재해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자평했다. 동의할 수 없다. 고작 29명이 준 것을 두고 긍정적 영향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사망한 289명 근로자 가족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발언이다. 성공했다고 평가받으려면 사망자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아야 한다. 개선됐다고 하면 그나마 이해가 간다. 새만금 잼버리대회에서 확인했듯이 관료사회의 태만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상적인 과정은 없고 오직 성과만을 쫓는  병폐가 된 탁상행정이 문제다.

한 정책관은 자율관리를 강조했다. 이 또한 동의할 수 없다. 이 방법은 직장 내 안전문화 의식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데 과연 잘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적은 인원으로 전국 업체를 다 관리할 수도 없을뿐더러 공무원들의 속성인 형식적인 관리에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신뢰할 수 없는 관료사회에 의지하기보다 기업 자체 노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 업계는 다행히 근로자 안전문제를 일찍 인식하고 투자와 예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위험이 많이 도사린 근로현장 특성상 사고는 줄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   

사용자는 근로자를 안전하게 퇴근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고귀한 목숨을 안전관리 미흡으로 잃게 된다면 이처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 곁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명을 달리한다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사용자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강요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근로자들 또한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을 철칙으로 여겨야 한다. 이것을 등한시하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퇴근해서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은 물론 가족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친구는 끝내 사랑하는 막내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하늘의 별이 된 그녀는 5명에게 자신의 장기를 나눠 주고 새로운 생명을 살게 했다. 딸은 용납할 수 없겠지만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생전 친구들에게 무엇이든 주고자 했던 훈훈한 인성에 마음마저 따뜻했던 그녀는 마지막까지 베풀고 천사가 됐다. 생전 그녀의 뜻이 그러했고, 그 뜻을 이어받아 실천한 자식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쓰러져 퇴근하지 못한 친구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더불어 더는 귀가하지 못하는 근로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용자와 근로자의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정부의 각종 제도도 효율적인 예방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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