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감축에 인력양성사업 잇따라 취소, 납품대금연동제 실효성 확보도 어려워
중장기적 관점의 인력양성 위한 예산 확보 및 뿌리산업 전용 전기요금제 신설 검토해야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하에 예산을 대폭 감축하면서 제조업 연구개발(R&D) 예산 뿐만 아니라 각종 지원사업 예산마저 삭감하여 국내 제조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본지가 뿌리조합들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윤석열 정부의 예산 감축으로 인해 뿌리산업 분야 기업의 고숙련·고급기술인력 양성 지원을 위해 실시해 온 ‘디지털 뿌리명장 교육센터 운영사업’과 뿌리기업의 재직자 역량 강화 및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뿌리기술 아카데미 지원사업’이 취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중소 제조업체들의 경영난 해소를 위해 실시한 ‘납품대금연동제’ 또한 제조 원가에서 비중이 높은 에너지 비용을 제외하면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본지에서는 정부의 뿌리산업 정책과 예산 감축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政, 산업부 소관 아니라는 이유로 ‘뿌리기술아카데미, 디지털 뿌리명장 사업’ 취소
국내 뿌리산업은 3D산업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어 왔으며, 팬데믹 이후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까지 제한되면서 인력 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뿌리업계에서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다양한 인력양성사업을 통해 대응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청년층 인재 유입을 위한 ▲뿌리기술경기대회,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뿌리명장 교육센터 운영사업 ▲뿌리기술 Academy 지원사업이 있다.
문제는 국내 뿌리기업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인해 청년층 유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재직자 대상 교육사업까지 취소되면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국내 뿌리기업 종사자들을 연령별로 조사한 결과 40대가 32.0%, 50대가 25.1%, 30대가 23.7%, 60대 이상이 8.7%로 40대 이상이 전체 종사자의 65.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적으로 국내 뿌리기업의 종사자들이 대부분 40대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직자 대상의 교육사업은 필수적이나 정부가 대책도 없이 예산을 삭감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문제는 정부의 예산 감축 논리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한 뿌리조합 전무에 따르면 정부가 예산 감축 이유로 꼽은 것은 담당부서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에 ‘디지털 뿌리명장 교육센터 운영사업’과 ‘뿌리기술 Academy 지원사업’은 모두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사업으로 진행됐다.
정부에서는 해당 사업들이 고용노동부 주관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사업이므로 산업부 예산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2011년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뿌리산업 지원은 줄곧 산업통상자원부의 담당 업무였으며,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 또한 산업부 산하의 공공기관이다.
현 정부가 주장하는 고용노동부 주관 사업이라는 주장은 애당초 예산 삭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확대를 통해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뿌리업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수급 불확실성이 심하기 때문에 단기적 대응 방안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뿌리조합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청년인력 유입을 위해 각종 기술교육원 설립과 장학사업 등을 적극 시행 중이나, 정부의 지원 없이는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편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는 예산 감축과 관련한 본지의 질문에 인력양성사업 대신 ‘제조기반기업 공정자동화 지원사업’ 등의 예산을 확대하여 실제 예산 감소 폭은 크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우 전쟁 이후 산업용 전기료 급등에도 납품대금연동제 미포함, 전용 전기요금 신설 필요
예산 감축에 따른 인력양성사업 취소 외에 또 다른 문제는 뿌리산업의 경영 개선 지원정책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지난해 말 ‘납품대금연동제’를 법제화하며, 주요 원부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물론 납품대금연동제의 법제화는 뿌리업계를 포함한 중소 제조업체들의 경영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뿌리업계에 따르면 원부자재 가격 상승분은 기존에도 일정 수준 납품대금에 반영되고 있었으며, 납품대금연동제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전기요금과 LNG 요금 등 에너지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대란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국내 전기요금과 LNG 요금 등 에너지 비용이 급등했다.
특히 주조, 소성가공, 금형,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6대 뿌리 중소기업은 원가 대비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영업이익의 43.9%를 전력비로 지출하는 등 타업종 대비 전기료 부담이 높은 상황이다.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업종인 열처리산업의 경우 원가 대비 전기료 비중이 26.3%에 달하며, 주조산업 또한 14.7%에 달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 비용을 연동제에 포함하지 않을 경우 납품대금연동제의 실효성 확보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뿌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국회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납품대금연동제 항목에 에너지 비용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정부에서는 에너지 비용이 인건비와 마찬가지로 경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산업용 전기요금과 LNG 요금이 급등하면서 뿌리업계의 경영이 악화됐는데도 정부가 에너지 비용의 연동제 포함을 반대한다면 뿌리업계의 경영난은 계속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국내 뿌리산업은 ‘3고(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에 따른 경영난이 지속되고 있으며, 청년층의 외면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인해 5년 후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내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단기적인 경영 개선과 중장기적 인력 확보가 모두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동제 실효성 확보와 예산 투입을 통한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뿌리업계에서는 엔데믹 이후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예산 삭감과 지원 정책을 축소한다면 뿌리산업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중장기적 안목을 갖고 전반적인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