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과 파이프, 건축자재, 전자제품 등의 필수 소재로 쓰이는 구리 합금의 주원료 동스크랩이 중국에 무더기로 팔려나가며 국내 산업계가 극심한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까지 국내 발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입도 줄면서 동스크랩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신동업체들은 구리 가공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스크랩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를 구할 수가 없어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스크랩이 품귀여서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수입 스크랩을 사용하거나 채산성을 맞출 수가 없는 전기동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시황에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비단 최근에 불거진 사안이 아니고 오랜 기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그 이면에 여전히 탈법적인 중국 수출이 이어지고 있는 점을 지목하고 있다. 국내 발생량이 부족해 자급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동스크랩 상당량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어 국내 수급불균형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몇 년간 원자재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대형 제련소를 잇달아 건설했고, 동스크랩 수입도 크게 늘리면서 세계 시장에서 스크랩 블랙홀이 되고 있다. 환경 문제로 수입 규정을 강화해 저급 스크랩 수입을 막고 있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 스크랩 가공기지를 만들어 이곳에서 중간 처리과정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유입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동스크랩 수입 규모는 190만~2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앞으로도 수입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오는 2025년까지 400만 톤의 동스크랩 사용을 목표로 하는 산업발전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상당한 물량의 동스크랩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점은 반대로 국내 스크랩 조달 어려움의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정상적인 수출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관련업계에서는 국내 세제의 허점을 이용한 불법수출에 대해 여전히 의심하고 있어서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과 대응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중국 수집상들이 국내 고물상을 돌며 웃돈을 얹어 현금으로 동스크랩을 싹쓸이해 왔고, 전국 조직을 갖추고 스크랩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대상(大商)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금을 주고 사는 무자료 거래는 세금계산서를 끊지 않아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는다. 이들은 컨테이너 입구를 고철로 가린 뒤 뒤쪽에는 비싼 동스크랩을 싣는 이른바 ‘커튼 치기’를 하며 세관 검역도 피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코인 현금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명동 환전시장을 통한 편법 거래도 빈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탈탄소화 시대에 중요성이 더욱 커진 재활용 자원이 중국으로 대량으로 빠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무역 거래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략 자원의 유출이라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스크랩 품귀로 인해 국내 전선, 신동, 제련업체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기초 산업 소재로 사용되는 동 및 동합금 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국내 주력산업에도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한국비철금속협회, 동공업협동조합, 동스크랩유통업협동조합 등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국세청, 관세청 등의 관계당국에 귀중한 자원이 불법, 탈법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동스크랩 시장의 무자료 거래 실태와 허술한 세관 검역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파악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국내 법의 사각지대에서 귀중한 재활용 자원이 유출되는 것을 더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