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안석은 11세기 북송의 정치가이다. 22세에 과거에 급제한 후 강남에서 16년간 지방관 생활을 하면서 관개 사업과 재정 관리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이름을 날렸다. 특히 왕에게 올린 만언서(萬言書)로 유명하다. 이것은 오랜 지방관 생활을 하며 절감했던 당시의 위기상황과 이에 대처할 개혁과 구체적 정책을 수립해 쓴 보고서이다. 당송 8대가로 불렸으니 문장의 뛰어남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가 명성이 높았던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의 현장행정이 당시 중앙 관료들이 표본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지방관 생활을 통해 경험한 현장의 목소리는 그가 재상이 된 후 정치를 개혁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그래서 그 개혁안은 ‘탁상행정’과 거리가 먼 ‘현장행정’의 면모를 명확히 보여 준다. 그가 주창한 개혁안이 제대로 실행 됐다면 국가와 농민, 중소상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기득권에게는 불리한 정책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개혁이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의 개혁안은 당시 병폐였던 대상인과 대지주의 횡포를 근절하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 기저에는 애민사상과 부국강병이 담겨있다.
그는 재상이 되어 수리 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새로운 법을 만드는 데 힘썼다. 이러한 노선을 집행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도 많이 중용했다. 이러한 연유로 그에게 여러 가지 제안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어느 날 한 관리가 “팔백 리 양산박을 다 비운 뒤 개간하여 뽕밭을 만든다면 그 이익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 팔백 리 호수 물을 어디로 돌린단 말인가?”라고 왕안석이 물었다. 마침 곁에 있던 국자감의 유공보가 “그건 아주 쉽지요. 곁에 팔백 리 호수를 하나 더 파서 물을 담으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왕안석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탁상행정은 지도자가 현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어림짐작으로 행정을 집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 정책이 현실과 거리가 멀어서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것을 말한다. 위의 얘기는 농토를 만들기 위해 양산박의 물을 비우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은 호수를 파서 옮기자는 얘기다. 이렇게 하면 양산박을 메우는 의미가 없어진다. 왕안석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이것이야말로 탁상행정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현장행정을 체득한 그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러한 탁상행정이 난무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률이나, 쓸데없는 제도, 시간과 예산만 잡아먹는 일을 반복시키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대형 국책사업일수록 사전에 자세하게 따져서 철저한 계획을 세운 뒤 시행해야 한다. 위의 사례처럼 엉터리 계획을 세워서 나중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책이 중요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인상, 주52시간근로제도 등이 좋은 예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목소리는 천만 번 이상 들어도 부족하다. 그리고 개선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기업에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 현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일방적인 지시로 갈등을 키우기가 일쑤다. 우리 직장에 병폐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당장 고쳐야 한다. 현장의 불만을 잠재우고 일방적인 지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올바른 노사문화가 정착될 수 없다. 회사의 성장·발전도 보장할 수 없다.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해법은 현장과 직원들에게 있다”라는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 내포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포스코 호(號) 수장으로 새롭게 탑승한 장인화 회장의 첫 번째 일성이다. 그것도 100일 동안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다. 필요한 사항은 즉시 개선해 직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한다. 지금은 ‘기대 반 걱정 반’의 두 가지 마음이 엇갈린다. 하지만 장인화 호가 순풍을 만나 순항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현장경영이라는 시작이 창대하기 에 그 성과도 좋을 것으로 믿는다. 포스코가 태풍 침수 100일 만에 정상화의 기적을 일군 것처럼 100일의 현장경영이 또 다른 기적을 창출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