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경험한 바로는 이 말은 틀린 것 같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귀천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귀한 직업일수록 보수가 후하고 그렇지 못한 직업은 보수가 적은 편이다. 이에 따라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야 한다.’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은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이것도 바람직한 생각일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직업에 얼마나 소신을 갖고 있느냐 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업의 가치는 보수에 따라 결정됐다. 최저 시급을 받는 단순 노동직보다 시간당 몇 만 원씩을 버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이 훨씬 귀한 직업으로 평가받았다. 직업이 가져다줄 수 있는 명예나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귀한 직업일수록 보수가 후하고 그렇지 못한 직업은 보수가 적은 편이라는 방식도 깨졌다. 이와 함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드디어 성립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마음가짐도 바뀌었다는 증거이다. 자신의 직업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직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은 존경스럽다.
우리는 환경미화원을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의 가치 실현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남들이 잠자는 새벽에 깨끗한 거리를 만들고자 흘린 땀의 가치를 인정해 준 것이다. 이 평가는 그들에게도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
이에 의사, 변호사, 회계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일용직 근로자, 청소 직원, 대리운전기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는 완전히 동등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진입 장벽이 높을수록 귀한 직업으로 인정받았다.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태적인 생각이 된 것이다.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이 모든 직이 존중받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혹자는 “귀한 직업이 어디 있고, 천한 직업이 어디 있나 돈만 잘 벌면 되지”라고 정의한다. 돈이 우선시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말이 맞을 수 있다.
중학교 동창회에 나가보면 실감한다. 중학교 졸업만 하고 공돌이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한 친구들이 있다. 이 부류는 밥도 잘 사고 술도 잘 산다. 이들이 동창회를 주도하는 편이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 공무원이나 선생이 된 친구들은 샌님처럼 소극적이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돈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지나친 배금주의(拜金主義)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사회적 현상이니 무시할 수도 없다. 이것을 보면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직업을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하고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
천조(天朝) 국 미국은 이러한 기류가 일반화되었다. 하물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벌까지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돈이 우선이다. 그래서 기술직이 인공지능(AI) 시대에 선호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용접이나 배관 등에 젊은이들이 몰린다고 한다. 사무 업종에 비해 천만 원 이상 차이 나는 연봉에 대학졸업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5년만 일해도 연봉 1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을 ‘공구 벨트’ 세대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붙여서 특화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의사들이 환자를 버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 와중에 SNS에 소아과 의사가 “용접을 배우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더 이상 살기 싫다”라고 글을 올렸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특정 직업을 우습게 생각하는 의사들의 특권 의식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의사들이 용접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에는 배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용접을 배우는 등 3D 업종 취급이 강했지만, 지금은 고부가가치 수익을 창출하는 직종”이라며 용접업계가 발끈했다. 용접 업을 존중하지 않은 의사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전국에는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 우리나라는 경제 대국이 됐다. 그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진실이 되고 있음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상대의 직업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