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칠레, 멕시코, 브라질 등 中 철강 규제 나서는 세계
중국산 저가 철강재에 무방비한 국내 시장
중국산 철강재와 수입대응재…저가 경쟁 가능할까?
반덤핑 제소 난항…품질 규제도 동반해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한국 시장에 상륙하며 관련 생태계 파괴를 진행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온라인 해외 직접 구매액은 약 1조6,476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9.4% 증가했으며 역대 1분기 기준으로는 최대 수준을 나타냈다. 생필품을 중심으로 국산 가격 대비 저렴한 탓에 중국 이커머스(전자상거래)를 찾는 손길이 크게 늘었다.
중국 플랫폼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제품군은 사치품이 아닌 범용재로 볼 수 있다. 특별한 기술력을 요구하는 제품이 아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이 비슷한 품질을 보인다면 당연히 저렴한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월별 활성화 이용자 수에서 쿠팡에 이어 2~3위를 기록 중이다.
국내 소규모 이커머스 업체는 물론이며 유통업계, 더 나아가 제조업계까지 비상 상황에 놓였다. 중국발 ‘초저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진단이다. 정부와 관련업계는 뒤늦게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기관은 위법 사항을 찾는가 하면 무역 장벽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발 이커머스 침공에 국내 철강업계는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 산업의 쓰임과 분야가 다르지만, 범용재 저가 경쟁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 철강시장은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을 쳐다만 보고 있다. 국내 철강시장과 같이 열려있는 시장은 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쏟아지는 중국산 저가 철강재에 몸살을 앓는 국내 철강업계는 결국 뒤늦게나마 대책 마련에 혈안이다. 국산 열간압연강판 가격이 중국산 대비 열위에 놓여있어 이를 대응하기 위한 수입재응재(GS400 강종)도 생산 및 판매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시황 악화를 막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결국 열연강판과 같이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은 중국산과의 가격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고품질 및 고부가가치 제품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물밀듯이 밀려드는 저가 수입재에 국내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편집자 주]
▣ “미국, 칠레, 멕시코, 브라질, Let’s go”, 中 철강 규제 나서는 세계, 그렇다면 열린 시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전미철강노조(USW)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통해 중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3배 인상하고 25%의 세율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2일 칠레 정부가 중국산 저가 철강재에 수입 관세를 최대 33.5%까지 부과할 것이라고 알렸으며, 멕시코와 브라질도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관세 인상에 나서고 있다. 친중 국가로 평가받던 브라질마저 중국산 철강에 대한 무역 장벽 건설에 나서는 분위기다.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이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중국 철강 규제로 인한 피해는 국내시장이 가장 크게 받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철강의 공급과잉은 필연적”이라며 “미국 등 주요국 수출이 막힌다면, 해당 물량들은 최단 거리에 놓인 국내시장과 동남아 시장으로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예상했다.
최근 중국철강공업협회가 중국산 철강재 고품질화를 천명하는 한편 중국 당국이 철강재 불법 수출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나 중기적으로 지속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며 “건설과 부동산 등 중국의 철강 전방산업이 무너진 상황에서 공급초과 물량은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 중국산 철강재와 저가 경쟁 가능할까?
글로벌 철강 생산과 수출 1위 중국과 근접한 탓에 국내 철강 시장은 중국 철강 시황에 크게 영향받는다. 중국 열연강판 가격은 글로벌 가격 벤치마크로 활용되기도 하며 통상 중국 철강재 가격은 국내 가격을 선행한다. 아울러 중국 철강사가 수입업계에 알리는 오퍼(Offer)가격도 국내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곤 한다.
현재 국내 철강업계는 GS400강종 등 특정 제품을 통해 중국산 저가 수입재에 대응하고 있다. 앞서 포스코는 “GS400강종을 통해 주요 고객사들로 유입되는 수입재를 방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GS400강종은 중국산 수입재 대비 소폭 높은 가격으로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다만 단순히 가격을 낮춘 제품을 통해 수입산을 견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원가의 개념이 다르다”면서 “뒷동산에서 철광석을 캐고, 이를 통해 쇳물을 생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중국의 롤마진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있으나, 중국의 시장 상황상 더욱 낮출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4월 초순 기준 중국 롤마진은 20위안(한화 약 3,800원)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철강업계는 수입대응재를 통해 중국산을 견제하고 있으나 초저가 경쟁이 이어진다면 국내 철강기업이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시장으로 수입된 중국산 열연강판은 약 142만 톤으로 전년 대비 35% 늘었다. 올해 1분기 수입량은 약 37만 톤으로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당량의 중국산 열연강판이 수입될 예정이다.
특히 중국산 열연강판은 낮은 가격을 무기로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한때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원가는 국산 유통가격 대비 톤당 30만 원 이상 낮은 가격을 자랑했다. 올해 중국 가격 상승과 국내 가격 하락, 환율 등으로 인해 가격 격차는 톤당 5만 원 안팎으로 좁혀졌으나, 향후 가격 격차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 반덤핑이 어렵다면 품질 규제도 함께 나서야
중국산 저가 철강재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업계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열간압연강판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국내 열연 제조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입는 타격이 커지고 있다.
1분기 포스코홀딩스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은 3%에 불과했다.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률은 1.7% 수준이다. 해당 업체들의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을 고려할 때, 열연강판 사업을 통해 얻는 이익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열연강판은 전 산업의 기초소재”라며 “다만 열연강판을 통해 얻는 수익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철강업계를 중심으로 산업의 기초소재인 열연강판 시장이 무너진다면 국가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는 연초부터 열연강판 관련 반덤핑(AD) 제소 등 무역 장벽 구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수입산 열연강판 구매량이 많은 냉연과 강관 등 하공정업계의 반발과 국내시장 여건상 반덤핑 제소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대중국 수출과 수입 등을 고려했을 때, 열연강판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점도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은 1,248억 달러를 기록한 반면 열연강판 수입은 8억6천만 달러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주도 및 의존형 경재 체제에서 중국을 상대로 반덤핑 제소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철강업계는 저가 중국산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반덤핑 제소와 함께 품질 규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철강재의 경우 국민의 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에 따라 저가 중국산 철강재가 아닌 품질이 우월한 국산 철강재 사용을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달청 등에서 필수 대상 선정해 국산 철강재 사용을 법제화해야 한다”라며 “내진 강재 등 안전과 친환경 분야에서 신뢰성이 담보된 국산 제품 사용을 더욱 늘려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