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모빌리티 소재 거점,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가보니
열처리 설비 내년 4월 준공, 2분기 내 상업화 목표
"3세대 강판, 美 임가공 테스트·부품 T/O 평가 완료"

"선행 연구부터 개발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2세대 수준인 초고장력 강판을 넘어 1.2㎬급 3세대 강판을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기 위한 양산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 13일 찾은 충남 당진제철소. 현장직원들은 곧 시범 생산에 들어가는 3세대 강판 준비로 바빴다. 그동안 공들여 개발해온 제품 생산이 임박했다는 데 대해 기대감에 한껏 부푼 모습이었다.
당진제철소는 연구개발(R&D) 중심의 제철소로 매년 성장하고 있었다. 2006년 전만해도 팀 단위로 운영됐던 연구 개발은 부속 연구기관으로 확대됐다. 연구 인력은 기존 100명에서 현재 600여 명까지 늘었다. R&D 투자액도 커지고 있는 추세다. 2014년 1,000억 원, 2021년 2,000억 원을 돌파했고, 올해 비용은 3,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 강판 강종은 현재까지 무려 300여종을 자체 개발했다.
현대제철은 글로벌 보호무역 확산과 자동차·건설 등 전방 산업 부진 속에서도 신규 수주와 고수익 제품 판매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무기는 3세대 강판이다. 자동차소재 전문 제철소라는 목표 아래 고객사인 완성차 경쟁력을 높이는 차량용 소재 개발 작업을 집중해왔던 만큼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인 차세대 강판 부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계획이다.
○ 3세대 강판, 승객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탄생
현대제철 기술연구소의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미래 모빌리티 컨셉트카 HSCB(H-SOLUTION CONCEPT BODY)가 한눈에 들어왔다. 스틸 소재로 설계된 컨셉트카의 무게는 총 436kg. 차체의 절반 이상은 1~2㎬(기가파스칼) 인장강도를 확보한 제품들로 설계됐다. 1㎬이면 1㎟ 당 100kg이상 견딜 수 있다. 강도가 그렇게 센 재료를 요하지 않는 루프(Roof)와 보닛(Bonnet) 제품이 350㎫ 이하급(1㎟당 35kg)인 것을 감안하면, 약 3배 이상 단단한 셈이다.

컨셉트카에서는 3세대 강판이 단연 돋보였다. 3세대 강판은 기존 초고장력강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성형성을 향상시킨 강판이다. 이 강판은 차량 안전성이 가장 요구되는 프런트 사이드 멤버(Front side member)에 적용됐다. 이 부품은 엔진의 양 측면에 위치해 앞뒤로 길게 뻗은 프레임으로 차체의 앞쪽을 지지해 준다. 마치 '지게차의 포크'가 연상되는 데 전면 충돌 시 현가장치에 큰 충격이 가지 않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제철 차세대개발팀 한성경 팀장은 "3세대 강판은 운전자와 차량 탑승객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개발한 제품이다"며 "자동차가 충돌할 때는 엄청난 에너지를 받게 되는 데 3세대 강판을 활용해 멤버 프런트, 루프 사이드, 범퍼빔, 센터 필러 등과 같은 내부 뼈대를 구성하면 부러지는 것이 아닌 잘 구겨지면서 충돌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하나의 세이프존(Safe zone)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세대 강판 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자동차에 590㎫급 이상의 초고장력강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을 거듭하면서 연강(270㎫급)→고장력강(340㎫급,1세대)→초고장력강(590㎫급,2세대)→초고장력+성형강(1.0㎬급, 3세대)까지 진화해왔다.
초고장력강 가이드라인인 바나나 다이어그램(banana diagram)에 따르면 인장강도(x축)와 연신율(y축)은 통상 반비례 관계를 나타낸다. 즉, 강도가 올라가면 성형성이 떨어지고, 성형성이 낮아지면 강도가 좋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3세대 강판은 1세대와 2세대 이상의 인강 강도를 아우르면서도 높은 연신율을 갖췄다.

기술적 난이도는 상당하다. 강점을 유지하면서 약점을 극복해야하기 때문이다. 2세대 강판인 트윕강(TWIP)강보다 강도는 20% 올려 충돌성을 보완하면서, 고강도 소재 적용에 따른 박육화로 경량화가 가능해야 한다. 또 높은 성형성으로 폼과 드로우, 홀펀치와 같은 혹독한 가공에도 크랙이나 찢김이 발생하지 않는 형상 정밀도를 보장해야 함은 물론, 여러 개 부품을 용접하지 않고도 일체화할 수 있도록 원가 절감 효과도 실현해야 한다.
현대제철은 합급 배합과 열처리 기술을 통해 3세대 강판 기술력을 확보했다. 한 팀장은 "3세대 강판의 핵심 기술은 철강재에 기계적, 물리적 성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퀀칭(Quenching)과 파티셔닝(Partitioning)을 적용한 열처리 기술에 있다"며 "3세대 강판은 현재 미국 임가공 테스트를 통해 최종 물성을 확보했고, 부품 T/O(표준정원) 평가에서도 기존 초고장력강 대비 성형성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내년 2분기부터는 3세대 강판 상업생산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내년 4월 프랑스로부터 발주한 열처리 설비가 안착되는 대로, 단계적인 생산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사전에 실증 테스트를 이미 완료한 상태인 만큼 초도품 검사 보고서 등 부품 공급을 위한 완성차사의 승인 작업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 열처리 설비만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일석삼조' 효과

열처리 설비는 당진제철소 2냉연공장에 놓인다.
3세대 강판 생산을 2냉연공장에 맡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최첨단 자동차강판이 생산되는 현대제철의 핵심 생산 시설로, 밀폐형 시설 레이저 용접기, 6하이 6스탠드(6 High 6 Stand) 등 최적의 설비 환경을 갖추고 있어서다.
신규 열처리 설비는 PL/TCM(Picking Line and Tandem Cold Mill:연속산세압연설비)와 도금 공정 사이에서 개조 공사를 거칠 예정이다. 이 설비는 철에서 페라이트, 펄라이트, 오스테나이트, 마르톈사이트 등 원하는 물성을 뽑아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이 조직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철의 인성, 취성, 경도 등 기계적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세대 강판은 페라이트와 마르텐사이트, 2세대 강판은 페라이트, 베이나이트, 잔류 오스테나이트의 조성을 갖는다. 3세대에는 페라이트 외에 중간 경질의 템퍼드 마르텐사이트와 성형성과 고강도를 동시 충족하는 잔류 오스테나이트를 구성으로 하고 있다.
이전 세대와 조직력이 다른 만큼 설비도 변화를 줘야 한다. 신규 설비에는 고수소를 활용해 열을 빠르게 식히는 기능이 탑재된다. 현대제철 차세대개발팀 한성경 팀장은 "3세대 강판은 달궈진 금속 표면을 초당 50℃ 이상 급속 냉각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설비 전환이 가장 강한 강도를 가진 마르텐사이트와 변형이 가해지면 성형성이 향상되는 잔류 오스테나이트 등 미세조직을 만들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규 설비는 3세대 강판 외에도 '1.5㎬ MS(Martensitic)강판'과 탄소 저감 강판 생산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 1.5㎬ MS강판은 높은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 제조공정 중 급속 냉각과정을 무조건 거쳐야 한다. 고로재가 아닌 복합공정 프로세스와 전기로로 만들어진 소재라도 기능적 문제는 없다는 판단이다.
현대제철은 고강도 저탄소 판재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로(100%)에서 생산한 열연강판과 냉연강판 제품은 각각 1㎬급,1.2㎬급을 확보했다. 전기로와 고로의 복합프로세스로 만들어진 강판은 1.5㎬급까지 개발됐다. 최근에는 세계 최고강도 수준인 2㎬급도 테스트를 마쳤다.
한 팀장은 "저탄소 제품의 성공 여부는 고객 수요에 달렸다"며 "전기로 기술을 70여 년 간 쌓아온 만큼 기술적 과제보다도 원가 비용 상승 등 요인이 고객들에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부담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