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 현대제철 신승훈 통상실장, “자율규제 성공 사례 없어…반덤핑 제소, 존립의 문제”

[신년인터뷰] 현대제철 신승훈 통상실장, “자율규제 성공 사례 없어…반덤핑 제소, 존립의 문제”

  • 인터뷰
  • 승인 2025.01.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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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이형원 기자 hwlee@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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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뒤바뀐 통상 환경…가드 내린 한국 철강산업
과거 H형강부터 후판과 열연강판까지…통상에 적극적인 현대제철
반덤핑 제소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저가 수입재의 내수 침략, 하공정도 경계해야
일본과 같은 인식의 변화는 어려울까?…“산업 구조가 다르다”
스트롱맨 트럼프의 귀환, 더욱 억세지는 통상 환경

“자율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미국과 EU가 자율규제를 시도해 왔으나 성공한 사례가 없다. 반덤핑 규제는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신승훈 현대제철 통상전략실장(상무)는 현대제철의 열간압연강판 반덤핑(AD) 제소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2024년 12월 현대제철은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중국산과 일본산 열연강판을 대상으로 반덤핑 제소를 진행했다. 

상식 이하의 낮은 가격으로 수입된 열연강판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며 철강 생태계를 교란하자, 현대제철은 국가기간산업을 보호하고 국내 철강 시장 환경 개선을 위해 칼을 뽑아 든 것이다. 

현대제철은 그동안 열연강판 수요가들의 입장과 요구에 발맞춰 자율규제를 통한 철강 생태계 회복을 고대했으나, 자율규제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며 직접적인 무역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신승훈 실장은 “대한민국은 전 세계 철강 공급과잉 진원지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상공정 제품 보호를 시작으로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규제를 통한 필터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10년 동안 뒤바뀐 통상 환경…가드 내린 한국 철강산업 


철강 공급과잉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중국 철강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이미 10여 년 전부터 글로벌 철강 시장은 공급량 과잉을 겪었다. 다만 2020년대 이후 통상 환경은 급격히 변했으며 모든 국가가 무역장벽을 세우는 와중에 대한민국만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신승훈 실장은 “철강산업의 공급과잉은 2014~2015년부터 이미 시작됐다. 당시 중국이 조강생산량 12억 톤을 달성하며 생산량을 극대화한 시기”라며 “다만 10년 전과 현재가 다른 것은 통상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세계는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철강 수출과 수입이 상호 간에 대규모로 이뤄졌다. 다만 2010년대 후반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코로나19 팬데믹, 자국 우선주의, 미·중 패권경쟁이 발생하며 세계는 블록화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신승훈 현대제철 통상전략실장. /현대제철
신승훈 현대제철 통상전략실장. /현대제철

신승훈 실장은 “당시 공급과잉에도 수출·수입 자체가 활발했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도 수입을 많이 진행했었다”라며 “이에 국내로 중국산과 일본산이 현재와 비교해도 많이 유입돼 안방 시장을 점유율을 많이 내줬지만, 국내 기업 역시 수출을 많이 진행하며 상쇄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변곡점은 바로 2018년이었다. 신승훈 실장은 “2018년 3월 미국의 232조가 시작됐으며 7월에는 EU의 세이프가드가 발효됐다. 이에 우리 철강산업의 수출시장이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라며 “수출길이 막혀 시황이 어려워질 수 있었으나 팬데믹 당시 철강 수요를 인위적으로 늘린 탓에 수출길이 막힌 부정적 영향이 다소 지연돼 찾아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승훈 실장은 “인위적 부양 효과가 끝나고 2022년 하반기부터 철강 시황은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으며 각국이 철강 무역장벽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라며 “최근 인도가 세이프가드를 발표했으며 앞서 튀르키예도 국산과 중국산 판재류 반덤핑 규제를 시작하기도 했다. EU 역시 2024년 8월 중국과 베트남, 인도 등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를 진행하기도 했다”라고 부연했다. 

결국 현대제철의 포함한 국내 철강업계의 고민은 비슷하다. 바로 저가 수입산에 안방을 빼앗긴 상황 속에서 수출로 손해를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 과거 H형강부터 후판과 열연강판까지…통상대응에 적극적인 현대제철 


2024년 후판과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의 책임은 모두 현대제철의 몫이었다. 과거 H형강(H빔) 무역규제부터 현대제철은 통상 분야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철강기업이다. 

신승훈 실장은 “전기로와 판재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전기로 제품의 경우 현대제철이 국내 선두업체이며, 중견 및 소규모 제강사까지 현대제철이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라며 “H형강 등 전기로 제품 분야에서 현대제철이 나서지 않으면 나설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으며 산업 보호를 위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나서게 됐다”라고 답했다. 

실제 2015년부터 중국산 H형강에 대한 규제가 시작됐으며 연간 60만~70만 톤에 달하던 중국산 수입은 최근 10만 톤을 하회하고 있다. 불공정 거래 형태로 유입된 저가 수입산 비중이 감소함에 따라 H형강 수급도 균형을 갖추고, 가격 또한 다른 철강재 대비 안정적인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판재류는 전기로 제품과 상황이 다르다. 국내 상공정 판재류 제조사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2곳이며, 비중 또한 포스코가 더욱 크다. 신승훈 실장은 “타사의 입장은 알 수 없으며, 현대제철도 수출량이 상당히 많은 기업이다. 특히 판재류 제품은 전 세계 그룹사향으로 물량이 많이 나간다”라며 “현대제철은 글로벌한 SCM(공급망관리)을 유지하면서 수출에 대한 타국의 무역규제 리스크가 있음에도 제소에 나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대제철은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의 한복판에 놓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승훈 실장은 “대한민국은 전 세계 철강 공급과잉 진원지(중국, 일본)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배경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상공정 제품이라도 무역규제를 신청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라며 “무역규제 이후 당장 제품 수입이 급격히 줄진 않겠으나, 필터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반덤핑 제소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현대제철은 시장의 자율적 규제에 기대며 철강 수입 흐름이 변하기를 기대했으나, 실상은 내수 잠식과 국내 업황 악화라는 결과물만 남게 됐다. 기초 소재인 열연강판 시장의 붕괴는 철강 시장 전체의 근간을 흔들 것이란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신승훈 실장은 “후판과 달리 열연강판의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후판의 경우 중국 내부의 생산 능력이 2024년에만 2천만 톤이 증가하는 등 공급과잉과 이에 따른 저가 물량 유입이 결정적이었다”라며 “반면 열연강판은 중국산과 일본산의 시소게임 등 다소 복잡한 모습”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당초 열연강판 무역규제와 관련해 철강업계의 시선은 중국산에만 쏠려있었으나, 현대제철은 중국산과 일본산을 구별하지 않았다. 두 국가의 열연강판이 시장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내수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국내 열연강판 수입시장에서 중국산과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크게 달라진다. 비중의 차이는 가격에 있다. 신승훈 실장은 “2023년 열연강판 수입은 엔저 현상으로 일본산이 크게 늘었으며, 2024년 수입은 중국 내수 가격 하락에 따라 중국산 비중이 늘었다”라며 “한일민간철강회의를 통해 일본 철강업계에 저가 수입 물량 증가와 관련된 항의를 진행하기도 했다”라고 답했다.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업계는 일본 철강업계에 자율적 규제를 언급하고, 일본산 철강의 가격 자정 노력을 촉구했다. 다만 일본 철강업계의 노력은 일시적 현상에 그쳤다. 2024년 1분기 일본 철강업계의 한국향 열연강판 오퍼(offer)가격은 톤당 680달러까지 오르며 중국 오퍼가격 대비 150달러 이상 높은 가격을 나타냈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구멍 숭숭 뚫린 국내 열연강판 시장으로 전략적 수출을 진행하는 중국 철강기업도 등장했다. 신승훈 실장은 “실제 성약돼 국내로 유입된 일본산 열연강판 가격은 여전히 저가였다”라며 “다만 일본산 가격이 일시적으로 높아지자, 중국산으로 계약이 몰리는 상황 속에서 중국의 일부 철강사가 수출 전략지역이 아니던 한국으로 수출을 시작하기도 했다”라고 답했다. 


■ 저가 수입재의 내수 침략, 하공정도 경계해야 


수입산 저가 철강재의 국내 시장 진출에 대해 철강업계는 기초 소재를 넘어 완제품 시장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기초 소재가 무너진다면 하공정 제품의 생태계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신승훈 실장은 “하공정은 상공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며 “열연강판 가격이 하락하면 후공정 제품의 가격이 하락하는 등 동일한 이슈로 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철강업계 일각에선 후공정 제품, 즉 컬러, 도금, 강관 등의 제품의 무역규제가 우선돼야 국내 철강 생태계가 바로 잡힐 것이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제철 신승훈 실장은 “공급과잉 여부는 따로 살펴봐야 한다”라며 “각 제품의 특성이 다르고 수급 구조가 다르며, 열연강판의 경우 하공정 무역규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사진은 현대제철이 생산한 열연 제품. /현대제철
사진은 현대제철이 생산한 열연 제품. /현대제철

현대제철은 열연강판과 하공정 제품의 가격 동조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승훈 실장은 “베트남과 튀르키예의 사례를 비춰볼 때, 열연강판 등 소재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면 단압밀과 가공사의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한다”라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현대제철은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에 따른 하공정 업계의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규제안에서의 상생을 강조했다. 그간 냉연·컬러·도금 등 하공정 업계를 중심으로 자율적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으나, 실제 영업환경에선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신승훈 실장은 “모두 현대제철의 중요한 고객사”라며 “다만 자율규제와 규제 속 상생의 조건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 실장은 “자율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가격에 맞춰 계약하겠다는 것은 이뤄질 수 없다”라며 “하공정 회사의 제품과 상공정 제품을 단순히 비교하면 수익성 차이가 상당하다. 현대제철은 최소한 원가 이상의 가격을 확보하자는 의미를 갖고 제소를 진행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현대제철은 상생에 대해서 확고한 입장을 피력했다. 신승훈 실장은 “규제 아래의 상생은 유효하다고 본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일본과 같은 인식의 변화는 어려울까?…“산업 구조가 다르다”


철강업계 대부분 관계자는 일본 철강시장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일본 수요업계의 자국산 철강 선호도는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자국산을 선호하는 인식만으로 여러 무역장벽을 대체하는 셈이다. 

현대제철은 국내 상황과 일본의 상황이 다른 점을 인정하며 국내 산업 구조의 현실적 어려움을 강조했다. 신승훈 실장은 “과거 국내 시장 건전화 노력을 지속하는 등 국산품 애용과 비규제 방식을 검토했었다”라며 “TBT(무역기술장벽) 등의 방식은 열연강판과 후판 등 판재류 제품에 실제 적용이 어려우며 결국 문화를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본 철강산업의 경우 가공기업이 비교적 적은 가운데 일관제철소가 제품 대부분을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수많은 가공사가 존재하며 구매력 또한 상당하다. 최저가 낙찰제에 따른 시스템적 한계도 일본과 다른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 스트롱맨 트럼프의 귀환, 더욱 억세지는 통상 환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국내 철강기업의 수출 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현대제철도 관련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신승훈 실장은 “예고한 대로 보편관세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수출가격 변화가 클 것으로 전망한다”라며 “물량도 줄어들 가능성이 존재한다”라고 예상했다. 

이에 현대제철은 미국에 선제적으로 제시할 협상카드로 조강 기준 원산지 조건을 언급했다. 신승훈 실장은 “현재 국내 하공정 업계를 통해 수출되는 물량 중 13%가 일본 소재 기반 제품”이라며 “물량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조강 기준 원산지 조건을 내걸어 국내 철강산업에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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