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사람들 입에서 “올해 장사 잘돼요”라는 말을 듣는 건 쉽지 않다. 재압연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취재 현장에서 시황을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힘들다”는 말뿐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단순한 엄살로 들리지는 않는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G스틸과 포스코스틸리온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7.5%, 39.6% 감소했다. 특히 동국씨엠은 무려 99%나 급락하며 사실상 영업이익이 거의 사라졌다.
재압연 업계를 대표하는 이 세 기업의 실적 부진은, 올해 상반기 시황이 얼마나 냉혹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가격 결정권을 잃어버린 채 ‘을’의 위치에 놓인 재압연 업체들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나 실상은 상공정의 가격 결정에 끌려다니며 면치 못해왔다.
재압연 업계의 핵심 원자재인 열연강판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며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산으로 인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컬러강판을 제외한 재압연 업계의 제품군이 고로사와 겹친다는 점도 가격 결정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냉연강판, 산세강판 등은 물론 도금강판까지도 고로사가 최대 공급자로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고로사가 유통향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상 재압연 업계가 단독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시장에 정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같은 구조적 어려움은 최근 시장 가격에서도 드러난다. 고로업체들이 유통향 열연강판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한 결과, 8월 4주 기준 열연강판은 톤당 80만 원 초반을 형상하고 있다. 반면 냉연강판에는 적극적으로 가격 인상을 시도하지 않은 결과 냉연강판 가격은 90만 원 초반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강종의 가격 차이가 최대 25만 원까지 벌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차가 현격히 줄어든 셈이다. 이는 고로업체들의 합세 없이 재압연 업계가 가격 인상을 시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움을 나타낸다.
이로 인한 피해 역시 재압연 업계에 더욱 가혹하다. 고로사는 재압연 제품 가격 인상이 더디더라도 열연강판 가격 상승을 통해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재압연 제품에 생산이 집중된 업체들은 마땅한 수익 개선 수단이 없다. 고로사들이 생산하지 않는 컬러강판 조차 반제품인 GI 가격에 크게 연동돼 있어 GI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컬러강판도 반등의 기회를 잡기 어렵다.
이 가운데 지난 7월 24일, 정부가 최대 33.59%에 달하는 수입산 열연강판에 대한 예비 반덤핑 관세를 발표하면서 재압연 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잠정 관세가 부과돼 재압연 업계에게 톤당 약 10만 원 이상 비싼 국산 열연강판 사용이 강제된다면, 하반기 경영 환경은 상반기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