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놈이 알지 파는 놈이 어떻게 안대유.” 이 말은 충정도 어느 시장에서 일어날법한 흥정이다. 충청도 사투리는 구수하다. 특유의 느릿한 말투는 정감이 간다. 그러나 그 특유의 말투 속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있다. 이것은 타지 사람은 잘 모른다. 충청도 사람만 안다. 우리는 충청도 사람들은 행동이 느리다고 알고 있다. 느린 말투에서 갖는 선입견이다. 자세히 따져서 알아보면 그렇지도 않다. 누구보다도 약삭빠른 것이 그들이다. 6·25 전쟁 시 부산에 제일 먼저 피난가 있는 사람이 충청도 사람이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올바른 경제행위라고 할 수 없다. 충청도 상인이 “사는 놈이 알지”라고 한 것은 본마음이 아닐 것이다. 흥정을 붙이기 위해 던진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구매하는 측이 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것도 우리 업계에 고착되어 있다. 전기로 제강사와 철스크랩업체 관계가 그렇다. 철스크랩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판매자가 아니다. 사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관행처럼 되어왔다. 이것은 양측이 합의한 방식이니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질 수도 없다.
갑과 을의 관계가 뚜렷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과거 철스크랩 거래 시장이었다. 항상 물건을 사달라고 읍소하는 쪽은 판매자들이었다. 이것이 깨어지지 않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탄소중립이 강조되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고물상으로 천대받던 업자들의 위상도 올라가고 있다. 국내 철스크랩 산업이 발전했다는 증거이다. 귀중한 자원으로서 인정받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종사자들 자부심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갑의 시선으로만 보던 제강사도 동업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철스크랩업자 들은 사업을 영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종사자도 마찬가지다. 항상 부정적인 시각이 따라다녔다. 그래서 각종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정부의 행정 규제와 단속도 심했다. 사실 도심 정화 측면에서 이들은 큰 역할을 한다. 만약 이들이 고철과 종이 등을 수집하지 않았다면 도시는 온갖 쓰레기로 더러워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몰랐던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들이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하는 이유이지만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이처럼 철스크랩 업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다. 사회 공익적인 성격이 짙다. 자원 재생은 물론 사회 빈약 층에 동기 부여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하루를 살기 위한 수단이 고철을 모으는 것이라면 누가 매정하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들이 수레에 수집한 자원이 철근을 만들고 형강을 만드는 원료가 된다. 이 제품이 다리를 건설하고 건물을 짓는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얼마나 큰일을 하는지 알았다면 대우해 주고 우리 경제 일원으로 인정해야 주는 것이 맞다.
철스크랩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철강자원협회 역할이 중요하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사기를 북돋으려면 특히 그렇다.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철스크랩 자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물 만난 고기 상황이 되었는데 조직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다행히 새로운 회장이 취임해 재정비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할 수 있었다. 창립 35주년을 맞아 발전을 다짐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동업자의 심정으로 걱정하고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가기 때문이다.
“국내 철스크랩의 유통 및 가공 체계를 재정비해 재활용률을 높이고 품질을 고급화하여 우리 업계 스스로가 탄소중립 정책 실행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난파 직전 선장이 된 황호정 회장의 일갈이다. 35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 이 말의 무게는 천근만근 무쇠처럼 무겁다. 종사자들이 느껴야 할 책임감의 무게이기도 하다. 이제는 탄소중립 시대에 친환경 소재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이와 함께 사명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파는 놈이 알지 사는 놈이 어떻게 안대유.”라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시나브로 세월 흐르듯 소리 없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