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62개국이 중국산 철강재 수입에 대한 무역규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저가재 유입으로 자국 내 시장 경쟁을 왜곡하고 세계 철강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중국의 국가 보조금에 대한 대응 조치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정에 따르면, 중국 철강업체의 보조금 지급률(기업 매출 대비 비율)은 다른 무역 상대국들의 평균보다 약 5배 높다. 주로 국영기업인 중국 업체들은 보조금과 세제 혜택, 시장 가격보다 낮은 대출, 보조금을 받는 에너지 등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운영을 지속할 수 있고, 저가에 해외로 덤핑 수출하여 다른 국가·지역의 철강업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중국의 철강 수출은 2020년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하여 2024년에 1억 1,072만 톤을 기록했고, 올해 들어서는 지난 9월까지 8,769만 톤을 수출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2% 늘었다. 현재 추세라면 1억 1,730만 톤으로 역대 최대치 경신이 유력하다.
전 세계 62개국이 중국산 철강재에 대해 207건의 무역규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중국 철강 수출에는 좀처럼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있다.
이는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국 철강업계가 활로를 해외로 돌린 결과이고, 미·중 간 관세 갈등과 더불어 증치세 탈루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 예고도 ‘밀어내기’수출을 오히려 강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중국 철강재에 대한 무역규제는 철근, 선재, 열연강판, 냉연강판, 아연도금강판, 스테인리스강판, 강관 등 거의 모든 철강 제품에 적용되고 있다. 전체 규제 207건 가운데 168건이 반덤핑 관세, 33건이 상계관세, 각 3건의 수입 쿼터와 수입 관세 부과가 진행 중이다.
62개국 가운데 미국(26건), 캐나다(20건), 호주(18건), 유럽연합(18건), 영국(13건), 멕시코(12건)의 규제 조치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 국가는 상당한 규모의 철강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저가의 중국산 침공에 자국 산업 피해가 크다고 판단하며 적극적으로 규제를 시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수출 증가는 미국, EU, 동남아 주요국의 보호무역 장벽에 맞서 현지 가공 후 재수출, 반제품 위주의 수출 확대, 비전통 지역으로의 진출 등을 핵심으로 상품과 시장의 다변화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중국의 수출은 완제품 보다는 반제품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단순히 제품 위주의 수입 제한보다 조강 중심의 원산지 관리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은 조강을 기반으로 하여 철강 원산지를 관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철강재를 마지막으로 가공한 국가를 기준으로 원산지를 판정하고, 수출 쿼터에 국산 물량을 산정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최근 유럽연합이 새롭게 수입 쿼터(TRQ)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조강국 모니터링도 도입키로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쿼터 자체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조강 원산지 관리 강화로 수입 열연코일, 와이어로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재압연, 가공업체들은 유럽 수출에 ‘K스틸’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크게 우려되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산 철강재에 대한 신뢰와 국가 철강 전후방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지금과 달리 철강 제품 품질을 결정하는 조강이 원산지 표기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