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로 제강사를 대표하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건설경기 악화로 인한 수요 감소와 저가 중국산 철강의 유입 등으로 철근 생산 라인 가동을 줄이는 등 업계 내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철근을 대표적인 과잉 생산품목으로 규정하고 설비 감축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현대제철 인천공장의 전기로가 멈춰 서고 포항공장의 희망퇴직이 현실화되었다는 소식은 한국 철강산업 전체에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수십 년간 불꽃을 뿜으며 대한민국 산업의 쌀을 공급하던 현장이 적막에 휩싸인 이유를 단순히 경기 불황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이면의 구조적 결함이 너무나 깊다.
지금 우리 철강업계는 ‘중국발 저가 공급 과잉’과 ‘고에너지 비용’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저가 수입재에 대해서는 통상 규제로 대응하고 있지만, 가파르게 오른 산업용 전기료는 국내 공장의 가동 의지를 꺾고 있다.
특히 전기로 제강사들은 생산할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이어지자 공장 폐쇄라는 특단의 대책까지 내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기 어려워 노사 간 상생 관계가 더욱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지난해 현대제철 노조의 사례는 뼈아픈 교훈을 준다. 노조는 시장 지표가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단협에서 ‘파업을 하면 회사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과거 호황기의 공식을 고집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사측에 공장 폐쇄의 명분을 제공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단기적인 성과급 얼마를 더 얻기 위해 투쟁하는 사이 7조 원이 넘는 투자금은 노조 리스크가 없고 생산원가가 낮은 미국으로 향하게 됐다. 껍데기만 남은 승리 끝에 남은 것은 국내 공장 폐쇄에 따른 일자리 상실과 지역 경제의 붕괴였다.
노조를 이해시키고 함께 동반자적 관계를 만드는 것은 당연 사측의 일이다. 하지만 이제 노조의 모습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 투쟁의 대상을 사측이 아닌 ‘시장’으로 확장해야 한다. 회사가 망하면 노조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 투쟁보다 시급한 것은 국내 생산 기지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사측과 머리를 맞대고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 방안을 논의하는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적 연대와 책임감도 회복해야 한다. 하청업체와 지역 상권이 함께 사는 생태계적 관점에서의 협상이 필요하다. 또한 장기적 생존을 위한 ‘고통 분담’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당장의 이익보다 10년 후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사측 또한 노조를 압박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투명한 경영 정보 공유를 통해 신뢰의 토양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철강산업의 심장인 용광로는 한 번 꺼지면 다시 살리기 어렵다. 지금의 침묵은 한국 철강산업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찰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노사가 함께 노를 젓지 않으면, 우리는 거친 파도 속에서 각자도생하다 침몰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택은 지금 우리 모두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