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은 절망적이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접을 수야 있습니까?”

  경기도 부천시 경인로 괴안동에 걸쳐있는 철강 유통·가공업체들은 지금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깊은 불황의 늪은 이곳도 비껴가지 않았다. 철을 통해 먹고 사는 그들이 철로 만든 가름 막으로 철시(撤市)를 한 채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한때는 철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가공 일감에 콧노래가 끊이지 않던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렇듯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희망을 접을 수 없다는 어느 젊은 사장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경기도권에는 철강 유통 및 가공업체가 저절로 생겨난 곳이 여럿이 있다. 이곳 부천시 경인로 괴안동 거리역시 1970년대 후반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그 옛날 공단이 인접한 이곳에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처음 소규모의 철공소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 사람들이 산업화를 불씨 삼아 가게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고, 어느덧 세월이 흐르며 도로를 한가운데로 해서 양옆으로 철강 유통 및 가공업체들이 다투듯 문을 열었다.

  “한때는 가공 일감에 24시간 설비를 가동해도 물량을 공급할 수 없을 때가 있었죠”라며 어느 TV의 프로그램 제목처럼 “그때가 그립습니다”라고 회고하는 주름 많은 한 사장님의 얼굴에는 이곳에서 보낸 질곡의 지난 세월이 묻어났다. 인생사 희로애락(喜怒哀樂)처럼 때로는 기쁨이 찾아왔고, 슬픔과 기쁨도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잘 나갈 때 사업체를 팔라던 젊은 사업가에 넘겨버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노년의 그를 찾아왔다.

  물론 이곳 사업체의 모든 사장이 나이 드신 사장님과 처지가 같지 않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됐다. 아버지로부터 사업체를 물려받았다는 국영파이프 김동형 사장은 “매년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잠시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철보다 단단한 굳은 확신으로 소박하지만 큰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고 있었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 같은 불볕더위도 이곳의 설비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반드시 있다. 단 한 거래처라도 잡기 위한 절박함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것이 어려움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생명력이 된 것이다. 무더위를 핑계 삼아 휴가를 떠나는 것은 이들에게는 사치다. 소량이더라도 거래처에 납품해야 할 물량만 있다면 더위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참 일꾼이다.

  넓은 세상의 한 쪽에서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 어엿한 산업 일꾼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 가치는 분명히 크다. 윤택한 생활을 위해 나사 하나에서 쓰레받기 등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이 하고 있다. 부천시 경인로 괴안동거리 철강 유통·가공업체도 이러한 큰 존재가치만큼이나 하루빨리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 더욱 큰 꿈을 꾸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