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창립 50주년 - 특집) (2) 새로운 전환점 된 민영화와 기술독립,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포스코 창립 50주년 - 특집) (2) 새로운 전환점 된 민영화와 기술독립,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 김도연 기자
  • 승인 2018.04.03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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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포스코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건설하던 1970~1980년대 고도성장 시대의 경영환경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더불어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이 국제화되면서 개방이 급속히 진행됐고 세계적으로 철강산업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었다.

  포스코는 기업이익과 사회공헌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직장,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선진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또 포스코는 광양4기 준공 이후 증강된 생산능력을 소화할 해외시장 개척 등 전략적 차원에서 해외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1990년대에 회사가 가장 역점을 둔 지역은 1992년에 수교한 중국이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중국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우선 화북, 화동, 화남 세 지역에 생산 및 판매 거점을 구축한 후, 이 지역을 발판으로 삼아 중국 내륙으로 진출하는 것을 전략의 기본으로 삼았다.

  포스코는 중국 시장 못지않게 베트남 시장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베트남 역시 사회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 국가로 투자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었다.

  해외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 베트남 시장을 선점하고, 현지 실정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베트남 정부와 현지 고객사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등 시장 기반을 공고히 했다.

  이 시기에 포스코는 종합 연구ㆍ개발 체제도 구축했다. 1987년 산학연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철강을 비롯해 이공, 신소재, 경영ㆍ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전개했다. 특히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그 기술을 자체기술로 소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기술개발로 응용 발전시켰다.

국내 기업 최초로 뉴욕증시 상장
국내 기업 최초로 뉴욕증시 상장

 

  1990년대에 들어와 기술경쟁 시대에 진입하면서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했다. 특히 R&D 부문 구조조정을 단행해 연구 부문을 분야별로 전문화하고, 1994년 6월 1일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 7월 1일 포스코기술연구소, 12월 1일 포스코개발기술연구소를 각각 설립했다.

  또한 이 시기에 포스코는 전문경영진의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하고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선진형 지배구조 정착을 위해 사외 이사제도를 국내 대기업에서는 최초(1997년 3월)로 도입했다.

  이후에도 포스코는 투명하고 독립적인 CEO선임을 위해 2006년 ‘CEO후보추천위원회’를 도입하고 이사회가 CEO의 경영활동 감시 및 견제 역할을 수행 하도록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는 등 지배구조를 지속적으로 발전 시켜왔다.

  국내기업 최초로 뉴욕증시 상장으로 한국전력, 삼성전자, 금성(현 LG) 등 국내 기업들이 해외증시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물꼬를 텄고 국내 자본시장의 세계 편입을 가속하는 계기가 됐다.


  ■ 새로운 전환점, 민영화

  1997년 들어 동남아를 중심으로 통화불안에 따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요 국가의 화폐가 폭락했고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상황을 맞았다.

  외환위기는 금융경색으로 확산되면서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부에서는 외환위기의 조기극복을 위해 정부지분 매각하고 그로 인한 수입을 국민경제의 구조조정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포스코를 최우선 민영화 대상기업으로 선정했다.
 
  포스코는 이미 1980년대부터 정부의 민영화 추진대상 공기업 1호였다. 경영실적이 우수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았으며 시장성이 있었기 때문에 1988년 주식 일부를 국민주로 공개한 이후에도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계속돼 왔었다.
  

3년에 걸쳐 민영화 완료
3년에 걸쳐 민영화 완료

 그러나 합리적인 민영화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다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1998년  11개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밝히면서 포스코의 민영화는 급속도로 진행됐다.

  1998년 12월 14일 정부지분 3.14% 전량과 산업은행 지분 23.57% 중 2.73%를 DR로 매각하는 것으로 민영화가 시작됐다. 1999년 7월 22일 산업은행 지분 8%가 DR로 매각됐다. 해외투자자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반영해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IMF 관리체제에 있던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 회복에도 큰 힘이 됐다.
 
  2000년 9월 29일 산업은행 지분 4.6%가 DR로 매각되고, 10월 4일 나머지 2.24%를 포항제철이 자사주로 매입함으로써 3년에 걸친 민영화 작업이 완료됐다.




  ■ 기술 수혜국에서 기술 원조국으로

  2000년대 초반 국내 철강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내수 증가율이 둔화됐고 세계 철강산업의 대형화 글로벌화 추세 지속과 함께 중국 등 신흥 철강국가들의 도전이 거세지는 등 경영환경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지속적인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기술력과 노하우가 축적된 국내에서는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투자를 확대, 질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고히 하고 해외에서는 전략 시장 중심의 글로벌 성장 투자를 확대해 글로벌화에 도전했다.

  특히 자동차강판, 석유 및 가스운송용 강관에 쓰이는 API강판, 스테인리스 강판, 고급전기강판을 4대 전략제품으로 선정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철강사 위치를 확보해 나간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세계 넘버원 자동차강판 전문제철소’ 기반 구축도 이뤄졌다. 국내생산 전략제품 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자동차 강판 생산 설비 증설, 전기강판 및 후판 설비 신예화 등 제품 고급화를 위한 설비 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세계 최고 자동차강판 공급사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한 기반을 갖췄다.

  또 세계 철강기술사를 다시 쓴파이넥스 상용화도 본격 추진됐다. 2003년 5월 포항에 연산 60만 톤 규모 파이넥스 데모 플랜트를 준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용화를 위한 기술개발을 가속화했다. 2004년 8월에는 연산 150만 톤 규모 상용설비를 착공, 2007년 5월 준공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포스코는 세계 최초로 파이넥스 상용설비를 성공적으로 준공하며 세계 철강 기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00년 이상의 철강역사를 가진 선진 철강회사들보다 한발 앞서 파이넥스공법을 유일하게 상용화에 성공시키고 철강제조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림으로써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기술 리더십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 대형M&A로 글로벌 기업 도약

  포스코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 상황에서 소재ㆍ녹색ㆍ해양 등의 신사업과 건설ㆍICTㆍ에너지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고, 사업 활동의 무대를 국내 중심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하며 그룹 경영을 본격화했다.

  포스코는 특히 대형 M&A를 성사시키며 사업영역 확대와 사업군 간 시너지 창출을 도모했다. 2010년 무역과 자원개발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現 포스코대우) 인수는 사업군 간 협력체제 구축의 기폭제가 됐다.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함으로써 그동안 40조원대에 머물던 연결 매출액을 60조원대로 끌어올려 명실상부한 초대형 그룹사로 발돋움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폭넓은 해외 네트워크는 포스코와 그룹사의 사업영역 확대로 이어졌으며, 철강 비즈니스, 신소재 시장 개척 및 판매, 대형 복합 프로젝트 공동 수주, 해외 자원개발, 해외 에너지개발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만들어 나갔다.

동남아 최초의 일관제철소 가동 (2013.12.23)
동남아 최초의 일관제철소 가동 (2013.12.23)

 

  이와 함께 해외 철강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글로벌 성장투자를 적극 추진했다. 2010년 9월 인도네시아 국영철강사인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법인 크라카타우포스코(PT. KRAKATAU POSCO)를 설립하고 동남아지역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건설을 추진했다.

  1973년 일본 철강사들의 지원으로 포항제철소를 건립한 이래 40여년만에 우리기술로 개발도상국가에 일관제철소를 건립지원하고 운영까지 하게 된 것은 기술 수혜국에서 벗어나 기술독립 나아가 기술원조국가로 우뚝 서게 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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