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서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임금에게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았던 신하들이 많았다. 군주의 눈을 흐리는 간신도 있었지만 의로움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극간(極諫)하는 충신도 많았다.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나라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설령 임금의 뜻이지만 거역하고, 노여움을 사는 일이어도 직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신하 입장에서 임금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임금 입장에서도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는 신하를 포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말보다 달콤한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더구나 최고 권력자인 자신의 면전에서 반박하는 신하의 말을 흔쾌히 수용할 군주는 드물었다. 이로 말미암아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죄로 가문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기도 했다.
이것은 어리석은 군주의 행동이고, 그렇지 않은 군주도 있었다. 간언(諫言)하는 것이 신하의 의무라면 이것을 경청하는 것은 임금의 의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하의 간언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경청하며 기꺼이 받아들인 군주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 성군에 불과했고 대부분 임금은 그렇지 못했다. 조선 시대 피비린내를 풍겼던 몇몇 사화(士禍)의 발단은 무능한 임금의 아집(我執 )에서 비롯됐다.
조선 시대 재상들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군주를 보필하며 나라를 이끌었다. 명재상 정광필도 이에 속한다. 그가 연산군 때 임금에게 사냥이 너무 잦다고 간언했다가 귀양을 가게 된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중종반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래에서 바르게 인도하는 신하가 없어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슬프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귀양에서 돌아온 후 영의정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임금에게 간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인자가 1인자와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기업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CEO를 보좌하는 2인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리더가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직언을 서슴지 않는 2인자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만약 리더가 구성원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감정에 따라 기업을 경영한다면 그 끝은 어디인지 자명하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 진평공이 “나라 환란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가?”하고 묻자 신하 숙향이 “제상이 녹봉만 받고 극간(極諫)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환란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업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영자들은 자신의 결정에 과도한 확신을 가지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특히 오너 경영자들은 성공으로 인한 자신감으로 객관적 판단력이 흐린 경우가 있다. 이때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용기있게 의견을 피력하는 2인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 장래를 위한 직언일지라도 오너의 생각과 다를 경우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생각은 기업을 망하게 하는 원인이다. 이러한 때에 2인자인 임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위치는 1인자 눈치를 보며 자리보전에만 급급하라고 앉혀 놓은 것이 아니다. “의로움을 따르는 것이지 임금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고 한 옛 신하의 말처럼 충성과 헌신의 대상은 기업과 구성원이지 경영자는 아니다. 그 구성원과 기업의 발전을 위해 직언을 망설여서 안 된다.
절차를 잘 지키고자 하는 리더의 자세도 중요하다. 리더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그를 무시하게 되고 결국 공동체를 유지하는 질서가 크게 흔들린다. 특히 공개적인 의견 수렴과 투명한 업무 처리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면 조직은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임원부터 말단까지 모든 직원 의견에 귀 기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의견 수렴을 통해 투명한 경영을 펼친다면 굳이 극간(極諫)이라는 부담스러운 과정 없이도 기업은 윤활유처럼 잘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