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일출(日出)보다 석양(夕陽)이 더 아름다운 것은?
황병성 칼럼 - 일출(日出)보다 석양(夕陽)이 더 아름다운 것은?
  • 황병성
  • 승인 2020.10.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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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 시대를 본격화했다. 이에 따라 정몽구(82) 명예회장은 자연스럽게 은퇴한다. 정 명예회장은 아버지(정주영)와 작은아버지(정세영)가 일군 한국 자동차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재계는 그를 재벌 2세였지만 창업경영자라 해도 모자랄 것이 없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그의 경영 인생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정 명예회장은 우리 철강업계에 공헌한 것도 지대하다. 외환위기 당시 무너졌던 한보철강을 인수해 현대제철에 합병하며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이바지한 공로는 크다. 이것은 제철에서 완성차까지 일괄 생산시스템을 갖춘 현대자동차 그룹의 기반이 됐다. 더불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하던 선대의 꿈이었던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그의 업적에서 빼어놓을 수 없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을 생산하는 일관제철소 건설은 국내 소재산업이 도약하는 데 한몫했다. 아울러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세계 최초로 자원 순환형 사업구조를 갖춰 기업 환경에 대한 책임과 지속 가능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현대제철은 고부가 철강재 생산을 통해 국내외 수요연관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모두가 정 명예회장이 놓았던 든든한 주춧돌 덕분이다. 

품질경영과 함께 특유의 위기 돌파력, 장자 의식은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이러한 신념이 2000년 9월 현대자동차를 비롯 10개 계열사, 자산 34조400억 원에 불과했던 현대자동차그룹을 2019년 말 현재 54개 계열사와 총 234조7천60억 원 자산을 보유한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전례 없는 최단기간 내에 세계 10개국에 완성차 생산시설을 갖춰 매년 700만대 이상 판매하는 글로벌 5위권 업체로 우뚝 섰다. 

특히 그는 평소 경영철학 중 가장 우선시했던 것이 ‘품질 경영’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최고의 품질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선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균일한 고품질 생산 공장을 적기에 건설할 수 있는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을 확립했으며, 전 세계를 발로 뛰며 생산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현장경영을 펼친 것은 유명하다. 

세계 최대 규모 연구개발센터를 구축해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확충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정 명예회장은 올해 2월 세계 자동차산업 최고 권위 상(賞)으로 여겨지는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전당 측은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성공의 반열에 올린 업계 리더이다. 기아차의 성공적 회생,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 고효율 사업구조 구축 등 수많은 성과는 자동차산업의 전설적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99년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 오른 지 21년 만이자,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현대차그룹으로 홀로서기에 나선 지 20년 만에 ‘MK 시대’가 막을 내린다. 그가 자식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물러주고 은퇴를 선택한 것은 정의선 회장을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 회장은 부회장 시절 아버지를 대신해 총수 역할을 잘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을 경영에 잔뼈가 굵은 정 명예회장이 모를 리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아버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노년에 승계 문제를 말끔히 처리하지 못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소신이기도 하다.

일출(日出)도 아름답지만, 서쪽 하늘을 부드럽게 물들이는 석양(夕陽)은 더욱더 아름답다. 질곡(桎梏)의 경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며 세계적 그룹으로 성장시킨 정 명예회장의 뒷모습은 석양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은 후배 경영인들이 본받아야 할 교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아쉬운 것은 밤잠을 줄여가며 전 세계 생산 현장을 누비던 그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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