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고철(古鐵)의 명예 회복

황병성 칼럼 - 고철(古鐵)의 명예 회복

  • 철강
  • 승인 2022.09.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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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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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에서 최근 한 약초꾼이 캔 천종산삼 7뿌리가 1억2,000만 원에 책정됐다고 한다. 한국전통심마니협회에 따르면 이 7뿌리의 무게는 75g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7뿌리 중 자삼 수령이 20년 이상, 모삼 수령은 100년 이상이라고 감정했다. 뿌리 길이는 72㎝에 이른다. 이 삼을 캔 약초꾼은 “심 봤다”라고 외치고 또 외쳤을 것이다.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산삼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100년 이상이나 된 것을 캔 것은 큰 행운이 따랐다.

오래됐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다. 산삼의 예도 있지만 의외로 우리 생활 주변에는 의미를 부여할 것이 많다. 필자의 노모가 소중히 아끼는 물건이 있다. 늘 방 한구석에서 달달 아픈 소리를 내던 재봉틀이 그것이다. 어머님과 같이 시집온 재봉틀은 애환 덩어리였다. 떨어진 옷을 기워 입어야 했던 가난한 시절은 최고로 유용했다. 이 때문에 새 옷을 입지 못해서 실망스러웠지만 철이 들고 나서야 알았다. 재봉틀은 우리 집 든든한 살림 밑천이었고, 어머니의 삶과 함께한 동반자였다는 것을…. 그래서 녹슬고 삐걱 되는 재봉틀을 노모는 오늘도 닦고 또 닦는다.  

이렇듯 오래된 물건은 깊은 울림을 준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하찮은 물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물건 주인에게는 둘도 없이 귀한 것일 수 있다. 비록 힘겨운 시간과의 싸움에서 녹슬고 기능을 상실했지만 그 의미까지 퇴색한 것은 아니다. 

책장에 오래 동안 꽂혀있던 유명 서적이 외형은 빛바랬지만 내용은 바뀌지 않은 것과 같은 논리다. 골동품도 마찬가지다. 최소 100년 이상 된 물건을 골동품이라고 한다. 그 물건의 본래 기능은 흘러간 시간만큼 퇴색됐다. 그러나 수억 원에 거래되는 물건이 많다. 가치를 따졌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함부로 버려진 고철(古鐵)은 천덕꾸러기다. 벌겋게 녹슨 채 방치된 모습은 흉물스럽다. 오랫동안 주어진 역할을 다한 공로는 없다. 속절없이 버림받았고, 결국 폐기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불명예는 여기까지다. 철 스크랩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탈바꿈하면서 신분이 상승했다. 그 가치를 인정받게 한 것은 수집 자의 공로가 컸다. 특히 친환경 철강이 세계적 화두가 되면서 귀하신 몸이 됐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있어서 획기적인 원료로 대접받는다. 몸값이 올라간 것은 친환경에 방점을 찍었다. 이것이 최고 가치이다. 

높은 가치에도 폐기물로 분류되던 고철이 순환자원으로 인정받게 됐다. 환경부 장관은 8월 26일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의 ‘환경 규제 혁신 방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닫힌 규제’에서 ‘열린 규제’로 표방한 것이 제도 개선 핵심이다. 그동안 철 스크랩 활용을 위해서는 업체별로 4단계에 걸친 신청과 검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규제 완화가 시행되면 이 같은 복잡한 절차가 없어진다. 늦은감이 있지만 종사자들이 만세를 부를 만큼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종산삼은 자연적으로 발아하고 만들어진 가치가 높은 종류의 산삼이다. 멧돼지 등이 배변 등으로 씨를 옮겨 뿌려 만들어진다. 가을에는 뿌리에 사포닌 성분이 가장 많을 시기다. 그걸 보여주는 옥색의 비녀(내년의 싹 대)를 달아 효능이 좋다고 한다. 이처럼 산삼은 발아되기도 힘들지만 생존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게 때문에 가치가 높다. 철 스크랩도 그동안 폐기물로 분류돼 각종 제약이 많았다. 종사자들이 받았던 차별 대우로 인한 서러움도 컸다. 하지만 순환자원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탄소 중립 시대에 핵심 원료가 된 것은 산삼이 지닌 가치와 다르지 않다.  

고철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일선 종사자들의 위상도 함께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수레 하나에 의지한 채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수집가들의 고충은 크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하루 벌어먹고 사는 생계형 수집가가 많다. 큰 건물이나 다리를 건설하는 것도 수집한 고철에서 시작됐다. 그렇기에 일선 수집가들이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삶도 윤택해져야 한다.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를 되찾은 고철은 그린 원료로 이름을 드날릴 일만 남았다. 이제는 “심 봤다”라고 외쳐야 할 가치 있는 고철의 명예회복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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