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후려치기’의 역풍?…日, 어떻게 中보다 더 찍혔나
수입재에 흔들리던 국내 열연강판 시장이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중국산 저가 수입재에 대해 무역위가 ‘최대 33.57%’ 잠정 덤핑관세 부과를 기재부에 건의한 가운데 본조사 기간 내 추가 피해 차단에도 나선다. 국산과 직접 경쟁하는 기초소재인 만큼, 시장 가격과 수익성 하락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 성격이 짙다.
이번 예비판정은 저가 수입재의 가격 왜곡 실태가 공인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철강업계의 시선은 일본으로 향한다. 덤핑률이 중국보다 더 높게 책정되면서, 그간 시장의 기준선으로 작용해 온 일본산 수입재의 구조가 정조준됐기 때문이다. 단순한 반덤핑 대응을 넘어, 유통 시세 전반의 지형이 달라질 조짐이다.
◇ 日 수출가, 내수 대비 40% 이상 낮아…“스스로 입증한 덤핑 구조”
이번 예비판정에서 일본산 열연강판에는 최고 33.57%의 덤핑률이 매겨졌다. 중국 바오산(29.89%)을 넘어서는 수치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내수보다 훨씬 저렴하게 수출해 온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본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일본 내수 열연 평균 가격은 톤당 약 998달러, 같은 시기 한국 수출가는 551달러 수준이었다. 격차는 무려 447달러. 환산하면 약 44.8%나 낮다. 수출가격이 내수보다 40% 이상 낮았던 일본산은, 그 가격 차이가 덤핑률 산정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열연강판 제조사 관계자는 “일본 공급자들이 자체 내수에서는 높은 마진을 유지하면서, 한국에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공급한 것이 문제가 됐다”며 “JFE는 열연강판 반덤핑 조사 개시 이후에도 한동안 오퍼를 이어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제철은 조사 개시 이후 대응 차원에서 오퍼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제조사 관계자도 “일본은 내수 가격이 높고 수출가격이 너무 낮았다”라며며 “이 마진 구조가 덤핑률을 끌어올린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일본 수출 전략이 ‘마진 후려치기’ 형태로 지속되며, 결과적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반면 중국은 수출가격뿐만 아니라 내수가 자체도 상대적으로 낮은 구조로, 정부는 ‘정상가격’ 추정 시 일본과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격 왜곡보다 산업피해 자체에 방점이 찍힌 결과라는 분석이다.
제조사 관계자는 “중국은 구조 자체가 저가이기 때문에, 일본처럼 내수와 수출 간 괴리가 덤핑률에 직접 반영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 ‘국산 시세의 기준선’ 역할…수급구조 전반 흔든 일본산
국내 열연시장 수급구조에서 일본산은 단순 수입재 그 이상이었다. 유통상부터 재압연사까지, 고정 수요가 형성돼 있었고, 국산보다 가격이 저렴한 일본산이 사실상 ‘시세 기준선’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재압연사 관계자는 “일본산은 가공성이 좋아 설비 세팅에 유리했고, 품질도 안정돼 있어 선호도가 높았다”며 “국산보다 10만 원 이상 싸게 들어오면서도, 가공 후 완제품은 고단가로 팔 수 있어 이익 폭이 컸다”고 설명했다. 특히 도금, 컬러, 냉연 등 하공정 가공업체들이 ‘원가 경쟁력’의 지렛대로 일본산을 활용해 온 구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열연강판 가격 전반이 왜곡됐다는 점이다. 열연강판 제조사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일본산을 기준 삼아 국산 시세를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계속돼 왔다”며 “가격 왜곡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반덤핑 조치가 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정은 단순한 수입 차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라며 “저가 수입에 의존하던 하공정 업계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으며, 유통 시장에서도 ‘수입 기준선’이 무너지면서 국산 중심의 거래 재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 연 300만 톤 수입시장…가격 인상·포션 조정 수순 전망
국내 열연 수입량은 연간 300만~360만 톤 수준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열연강판 수입량은 약 364만 톤, 상반기만 해도 178만 톤 이상이 유입됐다. 이 중 대부분은 일본과 중국산이다.
올해 상반기 열연강판 수입재는 약 150만 톤이 유입됐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 수입재 물량이 시장에 상당량 들어왔다”라며 “특히 지난 5월 수입은 21만 톤을 넘기며 10년 만에 최대 수준을 나타냈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재고 소진을 고려하면 예비판정 이후 몇 개월 내 시장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입재 영향력 감소에 따라 국내 유통업계의 실적 회복도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코일센터 적자가 구조적으로 누적돼 왔던 만큼, 이제야 정상화의 출발점에 선 셈”이라며 “수입재가 줄면 결국 국산 유통가격도 점진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반면 실수요 제조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는 “국산 가격은 올리면서, 수입은 막아버리는 이중 조치 아니냐”라며 “이전에는 수입재가 있어야 국산 가격을 견제할 수 있었는데, 이번 조치가 결국 공급자 쪽 가격 주도권만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현대제철은 이번 열연 반덤핑 조치와 관련해 소급 적용 방침을 명확히 밝힌 상태다. 예비판정 이후 잠정관세 고시까지의 공백기를 노린 저가 수입이 발생할 경우, 사후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업계에 경고한 셈이다.
실수요자·유통사들이 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물량을 들여올 경우, 향후 적용될 소급 관세로 인해 오히려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 시점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향후 시장 판세를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