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per Column]인류 역사의 변곡점에 항상 함께 한 구리

[Copper Column]인류 역사의 변곡점에 항상 함께 한 구리

  • 비철금속
  • 승인 2024.01.3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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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에스앤엠미디어 snm@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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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부 한국동기술연구조합 이사/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중국의 4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기술은 주로 구리합금과 깊은 관계가 있고, 근세 서양의 르네상스 민본주의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구리(Cu)의 어원은 라틴어인 Cuprum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BC 수 천년 경에 황화물 광석으로부터 제련된 몇 안되는 금속으로 BC 4,000년부터 청동합금으로 제조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BC약 3,500년 경, 로마제국에서도 사용된 구리는 키프로스(Cyprus)에서 채굴되고 30㎏ 주괴로 제련되어 로마는 물론 그리스 지역까지 유통되었다고 한다. 그 예로 수십명이 동시에 사용 가능한 생활용 가공품으로 유통된 흔적이 고대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즉, 구리는 인류의 발전과 함께했고 다양한 국가의 역사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진1) 30㎏ 동 합금 주괴(Heraklion역사 박물관, Crete, Greece, BC 1500 년경)

(사진2) 대형 청동 솥 가마(Heraklion역사박물관, Crete, Greece, BC 1450년 경 ).

한편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되어 왔다고 알려진 나침반(羅針盤, compass)은 지남침(指南針)로 알려져 있기도 하며, 중국 송나라 병서인 무경총요(武經總要)에 자석특성을 활용한 사용법이 최초로 기술되어 있지만, 아랍의 무역상을 통하여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인류의 삶과 지구역사를 바꾸는 변곡점 역활을 하게 된다.

제268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가 졸업한 폴란드의 야기엘론스키 대학(Jagiellonian University)의 졸업생 코페르니쿠스(N.Kopernikus, 1473∼1543) 신부는 당시, 불변의 진리인 프톨레미(Ptolemy, 83∼168)의 천동설(지구중심설)을 부정하고, 지동설(태양중심설, 우주와 지구는 구형)의 주장으로 천문학과 근대 자연과학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하였다.

40페이지의 지동설(Orbium coelestium, 1543)을 주장한 책이 교황청의 반대에도 출판되었고, 그해 5월에 사망하였지만, 콜럼버스(1451∼1507)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주대륙으로 마젤란(1480∼1521)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에 도착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구는 둥글다” 는 지동설이 증명되었다.

즉, 13세기부터 극한의 항해환경에 견될 수 있는 동 합금으로 제조된 이동식 나침반이 항해의 절대적 등불로 사용되어 정교한 항해술은 더욱 발전되었고, 지구의 지도가 제작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시대(세종 16년)에는 앙부일구(仰釜日晷)라는 해시계가 발명되고, 이후 휴대용 동 합금 해시계로 발전되었지만 대항해 시대의 자명 종으로 사용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사진3)앙부일구(仰釜日晷)

근래에 우리는 웹(Web), 블로그(Blog) 혹은 동영상 정보매체인 유튜브(YouTube)를 통하여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붓으로 글을 한 글자 씩 적어, 서책으로 만들어 전달되야 하므로 시간이 매우 걸리고, 전달에도 한계도 있어 훌륭한 지식이 사라지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문화유산인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고려 때 몽고침입으로 피폐해진 마음의 고통을 부처님의 자비로 다스리기 위한 불경으로, 1237년부터 16년동안 81,000장의 목판본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초기 인쇄술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긴 후 먹물을 바르고, 한지에 찍어서 서책을 제작함으로써 지식의 전달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쇄용 목판은 쉽게 뒤틀어지고, 갈라지고, 쪼개졌으며, 글자 하나를 잘못 새기면 다시 한 판을 만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어, 밀랍 주조방법으로 주조된 금속활자가 고려 우왕 때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

동 합금으로 제작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경(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 1377)과 같이, 활자를 한 자씩 조합하여 새로운 문장을 만들 수 있고, 개개인의 생각으로 창작된 인쇄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공유될 수 있는 금속활자는 반복적으로 장시간 사용이 가능한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그러나, 위대한 고려의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기여하기보다는 이보다 늦은 시기에 개발된 독일의 쿠르뎅 인쇄소에서 서양의 근대문화와 종교 혁명에 크게 기여하였다.

잘 알려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 신부는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정치와 서방교회의 면죄부 판매, 연옥에 대한 교황권 및 공로사상을 비판하는 9개조 반박문을 통하여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라이프치 논쟁,1519)는 복음중심주의를 표방하며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역사적인 프로테스탄트교(기독교)의 시작을 알렸다.

우연하게도 코페르니쿠스와 마르틴 루트가 독일의 남동부 작센주에서 활동한 것이 항해 술과 금속인쇄술로 인하여 많은 지구상의 인류에게 빠르게 전파된 것이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1650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 최초의 일일신문이 일반시민까지 읽히게 되었고, 휴대성과 신뢰성이 있는 구리합금 나침반으로 장기간 항해가 항해와 무역 및 국가 간의 협약에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생각된다.

 (사진4)세계 최초 매일 활자신문(라이프치히 역사박물관, 독일, 1650년)

한편, 우수한 주조방법으로 금속활자를 제조한 우리의 선조들은 당시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주석 때문도 있겠지만, 당시의 왕권 중심주의와 사회적 안정을 원하는 지배계층으로 인하여 금속활자 활용 인쇄기술의 발전과 확산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되니 매우 아쉬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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