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뿌리업계와 중소 제조업체 관련 조합들의 총회를 많이 방문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들의 총회는 보통 전년도 결산과 금년도 사업계획 보고 등 의안 심의나 임원 선임 등이 주요 안건인데 올해에는 특이하게도 경영 환경을 둘러싼 논의가 어느 때 보다도 활발했다.
특히, 5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들에게도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유예가 첨예한 이슈가 됐다.
현재 국내 뿌리기업들은 러-우 전쟁 이후 2년 가까이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라는 ‘3고(高) 악재’가 지속되면서 중소 제조업체들의 경영 여건이 크게 악화된 상황이다.
전쟁 이후 본격화된 공급망 충격과 에너지 대란으로 인해 국내 뿌리업계는 원부자재 수급난은 물론 급등한 원부자재 가격과 에너지 비용에도 이를 납품대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이 원안 그대로 적용될 경우 뿌리업계가 입을 타격은 치명적이라는 것이 업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뿌리업계의 경우 전형적인 3D산업으로 중대재해법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악화된 현재로는 설비 관련 투자가 어렵다.
게다가 중대재해법이 작업 현장의 안전 확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뿌리조합 이사장은 “실제 산업재해 사고의 경우 중소 제조업체의 잘못인 경우는 많지 않다. 산업재해의 절반 이상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제조업체들의 경우 사고 횟수도 상대적으로 적거니와 귀책 사유 또한 업체보다는 노동자 개인에게 있는 경우가 99%”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의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의 안전 확보 효과는 적은 반면 기업 경영에만 큰 부담을 주고 있어 적정 기간 유예와 함께 과도한 처벌조항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중소기업계가 중대재해법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미 유럽 등 선진국들이 노동 및 환경 기준에 초점을 맞춘 무역 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중대재해법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와 같이 작업자들의 안전 확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사업주 혼내주기식 처벌에만 집중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국내 뿌리산업은 대내외 악재로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뿌리산업의 경영 개선을 위해 연동제 실효성 확보와 함께 중대재해법 유예 또한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