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5일간의 긴 추석 연휴였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늙으신 노모를 고향에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 앞 감나무는 어머니와 함께 늙어 고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유년의 추억 속 감나무는 오롯이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늘 감이 익어갈 무렵 추석이 찾아왔다. 감나무 위에서 까치가 울면 삼촌이 귀향했고, 할머니와 가족들이 반갑게 맞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감이 익어 홍시가 되면 어머니는 그것을 장독 속에 고이 저장하셨다. 홍시는 겨울이 되면 아이스크림보다 더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추운 겨울 장독 속 홍시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애틋한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서이다.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홍시를 저장하는 것을 의무인양 하셨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밤이면 마실 가셨던 어머니가 돌아와 그 홍시를 꺼내 잠이 들깬 할머니와 맛있게 나눠 먹었다. 뒷산 부엉이 울음소리가 가슴 조려도 가족이 함께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하고 행복했다. 그 아름다웠던시절은 흑백 필름으로 추억 속에 소중히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돌고 돌아간다.
감나무와 함께 질곡의 세월을 넘어 오신 어머니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촌로(村老)가 되셨다. 지팡이에 의지한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자식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강직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한없이 나약해진 당신을 보며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을 원망해보지만 돌이킬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런 어머니를 홀로 두고 귀경해야 하는 마음이 내내 편하지 않았다. 또다시 자식들이 떠난 고향에서 외로움과 싸울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면의 밤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러한 후유증은 명절 이후 습관처럼 반복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욱 심해졌다.
장성한 손자는 온갖 이유를 대며 아버지와 함께 하는 귀성을 거부했다. 할머니의 내리사랑은 손자에게로 향한 지 오래다. 그것을 모르는 손자는 불편하기만 한 시골이 가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버지와 동행을 거부했다. 그것을 모르는 할머니는 꼬깃꼬깃 쌈짓돈을 꺼내 손자들에게 갔다주라고 건넨다. 그래야 손자들이 할머니를 잊지 않는다며 당신의 존재감을 알리려 애쓰신다. 할머니의 이 같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불편은 절대 핑계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유다.
아들은 명절이 되면 나이를 먹은 아버지가 온갖 불편을 감수하며 고향을 찾는 이유를 잘 모른다. 효(孝)와 고향(故鄕)의 의미가 퇴색한 요즘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패륜(悖倫)이 난무하고 글로벌화된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이해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자식들을 이해시키지 못한 어른들의 잦못이 크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혈육과 왕래하며 효도하고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가르쳐야 했었다. 세태가 그렇다고 방관한다면 아버지들의 섭섭한 마음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고향의 들판에는 추수가 시작되고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무서리가 차갑게 내릴 것이다. 그 스산함에 어머니는 객지로 떠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가 힘겨울 것이다. 당신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옛날처럼 홍시를 장독 속에 저장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설이 되면 손자들에게 먹으라고 내 놓는다. 군것질로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맛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손자들을 대신해 자식들이 맛있다고 먹으며 옛 추억을 떠올린다. 달콤한 것만 맛있는 것이 아니라 추억 속 홍시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 모른다. 인생을 더 많이 산 아버지들만 아는 맛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후유증이 심각하다. 장거리 운전, 과식, 불규칙한 수면 등 기존 생활패턴과 급격히 달라진 데서 오는 증상이다. 이른바 ‘연휴 후유증’ ‘명절 후유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명절 증후군은 음식 장만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명절 전부터 시작된다. 명절이 끝난 후에도 출근 압박감 등으로 지속되는 증후군이다.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의사들은 충분한 피로 풀기 등으로 생체리듬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리 있는 처방이다. 행동으로 옮겨 정상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생각도 아쉽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 잠시 내려놓는다. 마음이 편치 않아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