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한의 추위가 세상을 지배할 것 같았다.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이 꽁꽁 얼어버린 채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엄동설한의 추위 속 세상은 또 왜 불협화음에 어지럽기만 한가. 철없는 코 흘리게 장난처럼 질서가 없다.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 올바른 길을 인도하는 선지자도 없다. 모두가 무질서하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숨이 막힐 듯 답답하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세상 한가운데에 선다. 그러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허망하기만 한 절망뿐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혹한의 추위가 계속되면 따뜻한 봄이 머지않은 것처럼 말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얼음 속에 속박된 것들이 해방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차갑게 얼어붙은 감정도 눈 녹듯 풀릴 것이다. 투명한 햇살이 봄을 재촉하면 마음속에도 희망의 빛이 나래를 펼 것이다. 그때는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24 절기 중 마지막인 대한(大寒)이 지났다. 겨울의 끝을 알리고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예고한다. 겨울의 절정이자 봄이 저만큼 왔음을 알린다. 대한 이후 자연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이처럼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자연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대한(大寒) 끝에 양춘(陽春)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대한의 본질, 자연의 순환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대한의 한복판에서도 자연은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다. 땅 밑에서는 씨앗이 싹틀 준비를 하고, 동물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날 채비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준비하던 시기다. 농기구를 손질하고 종들을 배불리 먹여 농사철을 대비했다. 또한 새해를 맞이하고자 집안을 청소하고 대한의 마지막 날 밤 방과 마루에 콩을 뿌려 악귀를 쫓아냈다. 액운을 물리치기 위한 풍습이었다.
하지만 콧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여전히 차갑다. 살을 에일 듯한 칼바람이다. 우리네 마음이 지금 이것을 닮았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세상이다. 세상은 사람들을 속여 정신을 홀리며 어지럽힌다. 정치인들은 무대 위에서 망나니 춤을 멈추지 않고 있다. 결국 동토(凍土)의 땅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봄이 올지 걱정이다. 그나마 자연의 이치는 한 치 흐트러짐이 없어서 실망스럽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올곧은 봄을 맞이해야 한다.
절망할 수 없다. 희망을 품어야 봄이 온다. 그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는다면 끝내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건이 만만찮다. 국내외 환경은 하나도 우리 편이 아니다. 트럼프의 재등장은 부담을 키운다. 무질서한 중국의 행태는 이웃인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다. 속내를 감췄던 일본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철강 환경이 그렇다는 것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 한 복판에 서 있는 심정이다. 한줄기 빛이라도 보인다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 빛을 찾아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는 철강인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세찬 비바람이 없으면 절대 옥토가 될 수 없다. 비와 바람이 땅을 갈아엎어야 마침내 기름진 땅이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세상 속 바람이 모질고 비가 그치지 않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진통이다. 이 험난한 세파를 잘 견뎌내면 반드시 옛이야기를 할 때가 올 것으로 확신한다. IMF를 겪고 난 후 우리 경제가 더욱 튼튼해졌듯이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같다. 풍파를 겪고 나면 분명히 좋은 세상이 올 것으로 믿는다.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하다.
대한은 절기와 한 해의 경계선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세밑에 단절해야 할 것이 많다. 특히 국민적 화합(和合)을 저해하는 것이 첫째다. 우리 사회는 지금 좌우로 갈라진 이념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가 아닌 너와 나로 갈려서 상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악(惡)이다. 이것을 끊어내지 못하면 국가의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 경제 회복도 요원하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자부심이 컸던 우리 국민이다. 화합을 통해 얻은 알찬 결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좌우로 갈려서 무질서했던 신탁통치 시대를 연상한다. 이러한 난세가 지속되면 봄은 영영 오지 않는다. 꽃피고 새우는 봄은 허상일 뿐이다. 황량한 마음속에 봄이 와야 진정한 봄이다. 국민적 화합이 없으면 봄은 절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