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조공(朝貢)인가, 투자인가?

황병성 칼럼 - 조공(朝貢)인가, 투자인가?

  • 철강
  • 승인 2025.11.0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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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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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朝貢)은 본래 제후가 방물(方物)을 가지고 직접 천자를 알현하여 신하로서 예를 다하고 군신 간의 의리를 밝히는 정치적인 행사를 의미한다. 조공하면 중국을 빼놓고 말 할 수 없다. 중국은 한대 이후 중화사상에 근거해 주변 국가를 제후국으로 간주하고 천자에 대한 조공 사대를 요구했다. 이에 주변국은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중국은 하사품을 내림과 동시에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인정하는 책봉 정책으로 정치적 관계를 유지했다. 조공은 달갑지 않았지만, 힘없는 국가들이 안위를 보장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조공·책봉 관계는 자국의 안전을 위해 중국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외교정책이었다. 상호공존을 바탕으로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중국과 정치적 교류에는 반드시 경제적·문화적인 교류가 동반되었다. 이에 정치적 사신의 왕래는 형식적인 데만 그쳤다. 오히려 조공을 통한 문물교류와 발달한 선진문화를 수입하는 데 큰 비중을 두었다. 비록 조공이 형식상으로는 천자국과 제후국, 즉 종주국과 속국의 모습을 띠었지만, 실제로 정치적인 주종관계 형성에만 목적을 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집권층 자제들이 중국의 조공 사행에 동행해 발달한 중국 문물을 직접 보고 이를 조선에 소개하는 한편, 그동안 만주족이라고 업신여겼던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는 북학론(北學論)을 주장하기도 했다. 때로는 조공을 통해 선진국의 발달한 문화를 수입해 자국 발전과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을 비추어 보면 조공이 나쁜 것만 아니었다. 선진문물을 접할 수 있는 현장학습 역할도 충실히 했다.

우리가 조공만 한 것은 아니었다. 조공을 받은 적도 있다. 일본(왜)으로부터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일본의 다이묘들과 무로마치 막부 쇼군들은 조공 서한에서 조선을 상국(上國) 또는 대방(大邦)이라 높여 칭했고, 자신들을 누방(陋邦)이라 낮추어 칭했다. 이 중 일부는 백제 왕족의 후손이라 자칭하며 조상님 나라인 조선과 교역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이 밖에 대마도주가 조선에 책봉을 받으며 그 권위로 대마도를 통치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조선이 대마도를 직할령으로 삼지는 않았다. 이 사실을 지금의 일본 국민이 잘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조공을 나쁘게 생각하면 치욕이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우물 안 개구리’ 상황을 벗어날 좋은 기회였다. 조공은 갑과 을의 관계가 뚜렷했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분명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심히 못마땅하지만 약한 자는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을 죽이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현대에 와서 재현된다면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것도 혈맹으로 맺은 우방국이 갑질을 일삼는다면 이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으니 답답하고 안타깝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투자 정책이 조공 사대를 연상한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책은 혈맹으로 맺은 우방국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정상적인 문맹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막무가내식 요구가 도를 넘었다. 이것은 조공을 요구하는 중화사상에 흠뻑 젖은 옛날 대륙의 왕조와 다르지 않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미국 측 요구가 너무 무리하기 때문에 늦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인 요구만 하고 사인하라고 하면 그것은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다. 트럼프가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미국 제조업 부활이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 그 희생양을 한국으로 삼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관세를 볼모로 잡고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모습이 가관이 아니었다. 우리 정부의 협상력 부재도 문제였다. 이에 기업과 국민의 답답함이 극에 달했었다. 

미국은 한국이 망해도 조선, 반도체, 배터리, 원전 등 제조업 재건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자국 이익 앞에서는 혈맹도 우방도 없다. 이처럼 현실은 차갑고 또 냉담하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투자를 현금·선지급 방식으로 요구했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투자가 아니라 조공이다. 이것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는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 잘못하면 두고두고 지탄받고, 잘하면 칭송받을 이 선택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 다행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APEC에 참석차 방한해 타결한 무역협상에서  이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안심하기에 이르다. 언제  또 선불(up front)의 단어를 꺼낼지 모른다.  그동안 트럼프의 행동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협상 결과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안타까운 것은 철강과 알루미늄의 고율 관세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우리 업계는 꼼짝 없이 50%의 조공을 바치게 됐다. 할 말을 잃은 사람이 점점 늘어나니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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