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겹살은 서민 음식이었다. 옛날 아버지가 봉급을 받는 날이면 으레껏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삼겹살 파티를 했다. 직장에서 회식할 때도 단골 메뉴였다. 박봉으로 소고기는 엄두도 못 내던 시절 소주 한 잔과 삼겹살 한 점으로 회포를 풀 때가 많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삼겹살을 파는 식당이 생겨났다. 저녁이면 직장인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가난한 주머니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민 음식으로 불린 이유이고, 직장인들 사랑을 듬뿍 받은 이유다.
직장 동료와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힘든 시간을 이겨냈던 추억이 새삼 그립다. 소주 한 잔과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은 고된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삼겹살에 대한 깊은 애정은 이러한 추억을 잊지 못해서다.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사랑받는 이유다. 우리의 삶과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은 ‘소울푸드(Soul Food)’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로 스트레스를 풀던 직장인들은 하나 둘 은퇴해서 자연인이 됐다. 그 자리는 다른 세대들이 메워가고 있다.
서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워주던 삼겹살도 차츰 인기가 예전만 못해졌다. 그 자리도 다른 음식이 차지했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사람들은 온통 건강에 관심이 쏠렸다. 지방이 많은 삼겹살을 멀리하게 된 이유다. 직장인들의 회식 메뉴로도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 상황은 논리 비약일지 모르지만 직장인들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퇴직이 그렇다. 삼겹살이 인기를 누렸던 것처럼 회사에 도움이 되는 유능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고임금자가 되자 퇴직을 강요받는다. 명예퇴직이라는 미명(美名)이 미끼다.
삼겹살 소비가 시들해지자 양돈 농가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삼겹살데이’다. 이날은 삼겹살을 먹는 날로, 숫자 ‘3’이 두 번 들어간 3월 3일이 삼겹살의 ‘삼(3))’과 연결해 기념일로 만든 것이다. 이날의 유래는 2000년대 초반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양돈업계와 유통업체들이 만든 마케팅 행사에서 비롯됐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우 소비가 줄어들자 돼지고기 소비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이날은 식당이나 마트에서 할인 행사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지금도 그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 며칠 전이 그 날이었다.
세월이 흐른 것도 있지만 이제 삼겹살을 서민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몸값이 너무 올랐다. 식당에서 파는 삼겹살 200g, 즉 1인분 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인 2만 원을 넘긴 지 오래다. 인건비와 재료비 등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서민들은 삼겹살 한 번 사 먹기가 버겁게 됐다. 자장면 한 그릇이 평균 7,500원이다. 냉면과 칼국수 외식 평균 가격은 각각 1만 2,000원, 9,400원을 넘겼다. 이런 물가를 고려하면 지금 삼겹살 가격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은 철강 제품 밖에 없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외국인들이 삼겹살을 많이 찾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일본의 고로 상(마츠시게 유타카)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에 온 뒤로 일식이 생각나지 않고, 삼겹살만 생각난다.’라고 했다고 한다. 미식가도 한국의 삼겹살 맛을 인정한 것이다. 각종 야채 쌈에 삼겹살을 싸 먹는 외국인들을 흔히 본다. 이제는 희귀한 모습이 아니다.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일상화된 우리 음식문화다. 그것을 사랑해 주는 외국인이 있다는 것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국민에게 삼겹살은 저마다 의미와 사연이 담긴 특별한 음식이다.지난해 1인당 돼지고기 소비가 30㎏을 넘겼다고 한다. 그 중 삼겹살을 최고로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 삼겹살 사랑은 여전히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애석한 마음도 없지 않다. 돼지 멱따는 말이 있다. 돼지가 도살장에서 죽을 때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인간은 정말 잔인하다. 굳이 날까지 정해서 소비를 조장한다. 그만큼 돼지도 많이 죽어나간다. 감정을 지닌 생명에 할 도리가 아니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 감정을 초월한다. 3일만 안 먹어도 생각나는 것이 삼겹살이다.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의 식탐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