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연구진, 글로벌 허브 전략 담은 정책 제언 발표
한국 철강산업이 글로벌 공급과잉과 탄소중립 압력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국내 에너지 제약을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 트랙(Two-Track) 글로벌 허브 전략’이 제시됐다.
서울대 윤제용 교수(화학생물공학부), 연세대 민동준 명예특임교수(신소재공학부), ESG네트워크 고철연구소 김경식 소장, 서울대 곽정원 연구원(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등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탄소중립 클러스터 공동 연구진은 21일 국가 정책 제안 이슈브리프 ‘기로에 선 K-철강: 탄소중립 시대의 구조 개편과 글로벌 생존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이슈브리프는 한국 철강산업이 탄소 문제 이전부터 성장 한계에 직면해왔으며, 최근 수출 감소와 저가 외산 수입 증가, 내수 침체라는 ‘삼중고(三重苦)’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업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2050 탄소중립 목표와 EU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등 국제사회의 탈탄소 압력이 더해지면서 산업 전반의 근본적인 생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탄소 배출 ‘제로(0)’를 목표로 하는 수소환원제철은 장기적 해법이지만, 경제성 있는 그린수소 확보의 불확실성, 막대한 청정 전력 인프라 부족, 천문학적 초기 투자비라는 세 가지 높은 장벽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글로벌 주요 철강사들이 이미 에너지 중심의 생산 재편에 나서고 있음을 주목했다. 일본제철은 과감한 국내 구조조정 후 에너지 경쟁력이 우위인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확장했고, 세계 1위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그린수소 기반 환원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 역시 캐나다, 중동, 호주 등과의 에너지 파트너십 구축에 주력 중이다.
이는 탄소중립 시대 철강 경쟁력의 핵심이 과거의 ‘규모’나 ‘조업 기술’에서 ‘저렴한 저탄소 에너지·원료 확보 능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국내-해외 역할 분담 ‘투 트랙 글로벌 허브 전략’ 제언
이에 연구진은 국내와 해외에서의 역할을 분담하는 투 트랙 전략을 제안했다.
우선 첫 번째 트랙은 고부가가치 기술·자원순환 중심지로 국내 허브를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효율 고로 단계적 감축, 고품질 고철 활용 극대화, 전기로(EAF) 기술 고도화 추진, 자동차·에너지 등 첨단 산업용 고부가 강재 R&D 및 생산 기지로의 특화를 필요로 한다.
두 번째 트랙은 그린 철강 생산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해외 허브 구축이다. 호주, 캐나다, 중동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국가에 그린수소 및 환원철(HBI) 생산 허브를 구축하여 국내로 안정적 HBI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역 선정은 재생에너지 잠재력, 철광석 접근성, 지정학적 안정성, 우호적 통상 관계를 종합 고려해야 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생산 거점 해외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국내는 R&D와 첨단 가공 기술, 고부가 제품 생산이라는 고도화된 역할에 집중하고, 해외는 에너지 집약적인 1차 환원철 생산을 담당하는 상호보완적 글로벌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다.
▶ 구조조정·시장 창출·글로벌 협력·정의로운 전환 등 4대 정책 필요
이슈브리프는 투 트랙 전략의 성공적 이행을 위한 4대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전략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내 과잉 고로 설비의 질서 있는 감축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과 고철 순환 시스템 고도화 지원, 전기로 확대를 위한 고품질 고철 수급, 전력 믹스 저탄소화, 지역·고용 영향 관리 로드맵 마련 등이 요구된다.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해외 그린 철강 허브 투자 지원을 위한 ‘(가칭) K-Steel 글로벌 지원법’ 제정을 검토하고, 정책금융·세제 혜택·외교적 지원 포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그린 철강 동맹’ 구축으로 안정적 HBI 확보 및 판로 개척이 가능하다.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배출권거래제 강화로 탄소 비용 현실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녹색 공공조달 의무화로 초기 수요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탄소배출 강도 등급제와 구매 보조금 제도를 연계하는 ‘징검다리 정책’이 요구된다. 2차전지 시장 성공 사례를 참고하여 그린 철강의 가격 경쟁력 점진적 완화가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정책은 구조조정 과정의 지역 경제 및 고용 충격 완화 지원책 마련과 재교육, 신산업 유치, 사회안전망 확충 등 선제적 추진, 이해관계자와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전환 로드맵 수립의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
▶ “탄소중립 시대, K-철강 생존·도약 위한 국가 전략 필요”
윤제용 교수는 “한국 철강산업은 과거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지만, 이제는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생존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며 “국내 에너지 제약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글로벌 시각에서 에너지 및 자원 접근성이 유리한 지역을 활용하는 생산 네트워크 재편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민동준 교수는 “투 트랙 전략은 국내 산업 기반과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며 “단, 이를 위해서는 기업 자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연구진은 “탄소중립의 가장 큰 장벽은 경제성 문제”라며 “정교한 시장 창출 정책과 정의로운 전환 지원을 통해 그린 철강의 가격 경쟁력을 점진적으로 완화하고, 기업의 자발적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