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화의 척추 역할을 해온 철강산업이 전례 없는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과거 위기가 경기 순환에 따른 일시적 부침이었다면, 지금은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저성장과 탈탄소 압력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동시에 덮쳐오는 형국이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최근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연구진이 제시한 ‘투 트랙(Two-Track) 글로벌 허브 전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순한 위기 극복 매뉴얼을 넘어, 한국 철강산업이 생존하기 위한 냉철한 현실 인식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K-철강은 ‘저성장·저탄소·저가격’이라는 삼중고에 갇혀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로 수출 길은 좁아졌고, 내수는 침체되었으며, 수입 저가 철강재가 안방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환경 규제는 생존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었다.
저탄소 혹은 탈탄소를 위해 ‘수소환원제철’이 유일한 유일한 구원투수로 꼽힌다. 이론적으로는 정답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막대한 전력을 잡아먹는 수소환원제철을 국내에서 전면 가동하기에는 우리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초기 투자비와 경제성 있는 그린수소 확보의 불확실성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기술은 있으나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뼈아픈 현실인 셈이다.
연구진이 제안한 해법의 핵심은 ‘국내와 해외의 기능 분리’,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이다. 이 전략은 명료하다. 국내(트랙1)의 경우, 에너지 제약이 큰 비효율 고로를 줄이고 전기로 기술을 고도화하여 고부가가치 판재류와 R&D, 첨단 가공의 허브로 남긴다.
해외(트랙2)에서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저렴한 호주, 중동 등으로 눈길을 돌려 그린수소와 환원철(HBI) 생산 전초기지로 삼아 ‘에너지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다. 아르셀로미탈이나 일본제철 등 글로벌 경쟁사들은 발 빠르게 에너지 중심의 생산 재편에 착수한 점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철강산업의 경쟁력은 이제 더이상 ‘조업 능력’에 있지 않고, ‘저탄소 에너지 확보 능력’에 달렸다. 이 거대한 전환에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 사격이 필수적이다.
최근 ‘K-스틸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앞으로는 과잉 설비 감축과 구조조정을 유도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또 다른 법적 토대를 마련해 해외 자원 개발과 그린철강 동맹 구축을 외교·금융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녹색 공공조달 의무화와 배출권 거래제 강화를 통해 그린철강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시장도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 경제의 충격과 고용 불안을 해소할 ‘정의로운 전환’ 대책도 빠져선 안 된다. 사회적 대화 없는 산업 재편은 또 다른 갈등을 낳기 때문이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지금 머뭇거린다면 한국 철강산업은 저가 공세에 밀리고 탄소 규제에 막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이제는 한반도라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네트워크 위에 K-철강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