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반짝이는 고깃집 덕트의 이면…생활자재 곳곳에 스며든 중국산 저가 철강재와 6가 크로뮴

[이슈] 반짝이는 고깃집 덕트의 이면…생활자재 곳곳에 스며든 중국산 저가 철강재와 6가 크로뮴

  • 철강
  • 승인 2025.12.30 07:00
  • 댓글 0
기자명 이형원 기자 hwlee@snm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금강판 KS 개정 기준 생겼지만…덕트·외장재 현장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중국산 표면처리’

고깃집 주방 천장에 매달린 배기덕트, 옥상과 비상구의 난간 등 일상 공간에 쓰이는 자재들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산 저가 도금·도장강판이다. 

이들 자재에는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6가 크로뮴(Cr6+)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도금·도장강판 KS 개정으로 규제 기준은 마련된 가운데 덕트와 난간 등 중국산 저가 생활자재가 주로 쓰이는 현장에서는 여전히 표면처리 성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2025년 12월 24일 도금·도장강판 7개 품목에 대해 6가 크롬 제한 기준을 명문화한 KS 개정을 최종 고시했다. 6가 크롬을 EU RoHS 기준인 0.1%로 제한하고, 도금층과 화성처리, 도장층 전반을 관리 대상으로 포함한 것이 핵심이다. 표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표면처리 성분’이 규제 언어로 들어온 셈이다.

다만 이 기준이 실제 덕트와 난간 같은 생활자재 현장까지 작동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라는 평가가 많다. 업계에서는 “KS는 바뀌었지만, 현장은 아직 그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 나온다.


◇ 왜 덕트에 6가 크롬이 쓰였나…공정 구조의 문제


6가 크롬이 덕트와 난간 등에 사용돼 온 배경은 단순하다. 아연도금강판은 도금 이후 반드시 표면 안정화 공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적용되는 것이 크로메이트 처리다. 크로메이트 처리는 아연도금층 위에 얇은 피막을 형성해 백청(White Rust)을 억제하고, 이후 도장층과의 밀착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특히 6가 크롬 기반 크로메이트 피막은 2~4마이크로미터(㎛) 두께로 형성되며, 내식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긁힘이 발생하더라도 스스로 피막이 회복되는 ‘자기 수복 효과’ 역시 현장에서 높게 평가돼 왔다. 이런 특성 때문에 6가 크로메이트 처리는 오랫동안 ‘검증된 공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고깃집 주방 천장에 매달린 배기덕트, 옥상과 비상구의 난간 등 일상 공간에 쓰이는 자재들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산 저가 도금·도장강판이다. /철강금속신문DB
고깃집 주방 천장에 매달린 배기덕트, 옥상과 비상구의 난간 등 일상 공간에 쓰이는 자재들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산 저가 도금·도장강판이다. /철강금속신문DB

업계 관계자는 “6가 크롬은 표면이 눈에 띄게 반짝거리고 균일하게 나오는 게 특징”이라며 “육안으로 보기에도 깔끔해 보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표준처럼 사용돼 왔으며, 실제 시장의 선호도도 높았다”라고 전했다. 

이에 6가 크롬은 음식점 배기덕트, 난간과 외장재, 루버, 데크플레이트는 물론 가전제품 외장용 도장강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돼 왔다. 

문제는 관련 법규가 이미 여러 갈래로 존재함에도, 덕트와 난간 같은 생활자재에는 실질적인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통해 2023년 1월 1일부터 건축용 페인트의 6가 크롬 제조·수입을 제한했으며, 컬러강판 도장용 크롬산 스트론튬은 업계 준비 기간을 고려해 2025년 1월 1일부터 제한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6가 크롬을 허가대상물질로 지정해 근로자 노출 기준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다만 덕트와 난간에 적용되는 개별 법규를 들여다보면 공백이 분명해진다. 건축법은 도금부착량 기준만 규정할 뿐, 화성처리 성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기계설비 기술기준 역시 덕트 재질을 ‘아연도금강판’으로만 명시할 뿐, 크로메이트 처리 여부나 6가 크롬 사용 여부는 확인 대상이 아니다. 소방청의 음식점 배기덕트 기준 또한 두께와 재질만 규정할 뿐, 표면처리 성분 검사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에 아연도금강판이라는 표현 하나로 자재 적합 여부가 판단되는 구조가 유지돼 왔고, 그 안에서 어떤 화성처리가 적용됐는지는 제도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 수입과 시공, 유통, 세 단계의 검증 공백


덕트와 난간, 외장재에 사용되는 도금강판 가운데 상당 물량이 중국산 저가 제품이라는 점도 이 같은 문제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업계에 따르면 GI(아연도금) 기반 생활자재 시장은 가격 경쟁이 치열해, 내수 현장에서는 국산보다 중국산 도금강판이 우선적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중국산 제품의 경우 도금량을 최소 수준으로 낮추고, 공정 비용이 적게 드는 표면처리 방식을 적용해 가격을 크게 낮춘 사례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화성처리 성분이나 도료 내 6가 크롬 사용 여부에 대한 검증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구조는 수입·시공·유통 전 단계에서 반복된다. 수입 단계에서는 제조처 성적서만 확인될 뿐, 표면처리 성분을 직접 분석하는 절차는 없다. 외관과 치수, 기본 규격만 통과하면 통관이 이뤄지는 구조다. 수입 덕트 자재에 6가 크로메이트가 사용됐는지 여부는 사실상 알 수 없다.

건설 현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시방서에는 ‘아연도금강판’이라는 한 줄만 기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로메이트 처리 방식이나 도금 이후 공정에 대한 언급은 없고, 현장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단이 없다. 자재가 반입되면 그대로 시공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유통 단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컬러강판이나 도금강판은 두께와 도금부착량을 중심으로 검사될 뿐, 도료나 화성처리 내 6가 크롬 함유 여부를 점검하는 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다. 업계에서는 “겉에 덧칠만 돼 있으면 그대로 시장에 풀리는 구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 제품이 싼 이유는 단순히 인건비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도금량을 최소 수준으로 낮추고, 가장 값싼 표면처리 공정을 적용해 원가를 줄이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6가 크롬은 원료 가격이 저렴하고 공정도 단순해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며 “환경 규제가 느슨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가성비 공정’으로 쓰이고 있으며 시험을 하지 않으면 6가인지 3가인지 아무도 모른 채 시공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검증 공백이 중국산 저가 도금강판이 생활자재 시장에 빠르게 확산한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 KS 개정, ‘표면처리’를 건드리다


이번 도금·도장강판 KS 개정은 이런 구조 속에서 표면처리 공정을 규제 언어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6가 크롬 기준을 명문화한 가운데 적용 범위를 도금층뿐 아니라 화성처리와 도장층 전반으로 확장했다. 도금부착량 평가 역시 완제품 단계까지 확대됐고, SEM·EDS 분석을 통한 합금계 도금 판별 근거도 마련됐다.

또한 시판품 조사와 1년 주기 공장심사 강화 방안이 예고되면서, KS 적용 제품에 대해서는 사후관리 체계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확인할 수 없던 영역을 처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준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KS 개정만으로 생활자재 전반이 자동으로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KS 비적용 제품은 규제 대상이 아니며, 수입 덕트 자재에 대한 통관 단계 성분 검증 제도도 여전히 부재하다. 건설 현장 시방서가 개정되지 않는 한, 실제 시공 단계에서 6가 크롬 사용 여부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한편 국내 업계의 대응은 이미 6가 크롬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 관련 제조사들은 환경 규제 강화를 감안해 덕트와 같은 내수 생활자재를 중심으로 3가 크롬 기반 화성처리 공정 전환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3가 크롬 공정을 적용한 덕트용 도금강판을 공급하며, 건설사와 시공사를 상대로 사용성 검증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관과 내식성, 시공성 등 현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라는 설명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는 결국 3가 크롬으로 갈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다만 3가 크롬 공정은 기존 6가 대비 원가 부담이 큰 만큼, 가격 경쟁이 치열한 생활자재 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 수 있을지는 변수로 남아 있다. 
 

저작권자 © 철강금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