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황병성 칼럼 -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 철강
  • 승인 2023.07.1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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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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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모깃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뒷산의 부엉이 울음소리에 가슴은 콩알처럼 작아졌다. 무서움에 할머니 품을 파고들던 유년의 여름밤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유성이 하늘 반을 가르며 미지의 땅으로 사라질 때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절정에 달한다. 하얀 소복을 입고 나타난다는 귀신 이야기부터 호랑이 담배 피우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는 풋풋한 동심에 무섬증을 불어넣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옛날이야기는 여름밤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세월은 흘러 이야기꾼 할머니는 고향 뒷산에 누워계신다. 소년은 커서 어른이 되었고 여름이 되면 아련한 유년의 추억을 깨우곤 한다. 그래서 휴가철만 되면 고향을 찾는다. 그 고상했던 여름밤의 낭만을 소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끝내 마음이 허망하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른다. 마당의 평상은 아버지 홀로 앉아서 외롭다. 아이들은 에어컨이 나오는 방에서 게임하거나 유튜브 시청으로 정신이 없다. 세대 차이는 그렇게 아쉬움과 섭섭함을 불러왔다.

휴가철이 되면 떠오르는 단상(斷想)이다. 과거에는 여름휴가를 피서 간다라고 했다. 더위를 피해 강으로,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바캉스는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휴가지 곳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고 ‘바가지요금’이 기승을 부리며 서민들의 얇은 지갑을 털어갔다. 그래도 그때야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시골 평상에 앉아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모처럼 일탈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그 시절은 오롯이 추억으로만 남았다. “피서 간다”라는 말은 신조어처럼 생소한 단어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직장인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지던 휴가는 여름휴가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다려졌고 치밀한 계획으로 그날을 대비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휴가제도도 바뀌었다. 연차라는 제도가 새롭게 생겼다. 근로자가 연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가를 말하는 데 보통 1년 근무하면 15일의 휴가가 주어진다. 사측은 연차촉진제로 휴가를 권장하기도 한다. 여름휴가라는 개념이 희석되고 사시사철 자기가 선택해 휴가를 가는 시대가 되었다. 휴가지도 국내가 아닌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일상화 됐다.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 업종을 들라하면 우리 업계가 으뜸이다. 뜨거운 불을 다루는 특성상 종사자들에게는 지옥과 같다. 이들이야말로 휴가가 필요하다. 회사마다 여름이면 비상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 내용이 다채롭다. 근로자의 탈진을 막기 위해 염분이 함유된 식염포도당정을 현장에 구비해 수시로 섭취하도록 한다. 음료·빙과류·과일 등의 간식을 제공하는가 하면 삼계탕 등 보양식을 제공해 직원들의 건강을 챙긴다. 사업장 특성에 맞춰 체온을 낮출 수 있는 아이스 재킷·얼음 등도 제공한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은 이러한 현장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다음 열심히 일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휴가다. 우리 업계 종사자에게 여름휴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남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극락과 천국을 즐기고 있을 때 지옥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보상처럼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휴가가 얼마나 달콤한 지는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막걸리 한잔으로 목마름을 축이는 농부의 만족감과 다르지 않다. 이들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것은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기 위함이다. 더욱 큰 보람과 성취감을 얻기 위한 쉼표이기도 하다.  

옛 선현들이 오늘날 여름철 문화를 접한다면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불볕더위, 찜통더위, 삼복더위를 이겨낸 우리 조상들의 피서는 고작해야 부채와 시원한 자리 깔개 등이었다. 여기에 죽부인이 있었다면 호사스럽다. 그래도 그 무더운 여름을 잘도 이겨냈다. 선현들의 등목과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피서법은 현대의 에어컨 바람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더워도 호들갑을 떤다. 인간이 극복해야 할 자연 현상이지만 문명의 이기에 의지해 극복하려는 나약함이 안타깝다.

그 많던 반딧불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인간이 저질러 놓은 환경훼손으로 시나브로 세상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앞으로 여름은 더욱 무덥고 혹독한 계절로 다가올 것이다. 순수하고 맑았던 여름날의 추억도 애잔한 그리움이 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월야탁족(月夜託足)의 피서법이 생각난다. 달밤에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다는 얘기다. 이번 여름휴가는 이 피서로 더위와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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