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장대(重厚長大)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단순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오히려 상당히 복잡하고 세밀한 것이 철강 및 비철금속 산업이다.
따라서 변화의 속도 역시 여느 제조업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최근에는 상당히 빠른 변화의 기류를 타고 있으며 많은 상황 변화에 처해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것이 현실이다.
제품과 기술 측면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나 마케팅과 같은 소프트웨어 적인 측면에서도 변화의 속도는가파르다.
국내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10년 전에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시장 특성을 보였다면 현재는 완연히 수요가 주도로 바뀌었다.
그런데 철강산업 내부에서 10년, 아니 20년이 다 되도록 변화가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스틸서비스센터(SSC)들이 제품을 가공해 주고 받는 가공비다. 열연, 냉연 스틸서비스센터들의 가공비는 1990년대 초반 스틸서비스센터 개념이 본격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 톤당 1만~1만5천원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도 기본적으로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종 인건비와 부자재 등 비용이 상승했음에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급 불균형, 다시 말해 스틸서비스센터들의 가공능력이 공급 과잉인 탓이다.
대부분 철강 제품의 생산능력도 수요를 초과한 상황이지만 특히 가공능력은 수요를 훨씬 초과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시장 상황상 경쟁이 심하고 그만큼 제 가격 받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또한 철강 제조에 비해 가공은 그 공정이 극히 단순하다. 다시 말해 차별화가 어렵다.
가공비를 차별화 하는 것도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와 같다. 생산성도 공정이 단순하다 보니 그만큼 향상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여건들을 모두 고려해 보면 스틸서비스센터들이 비용이나 가공비 차별화가 어렵고 그만큼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를 가졌다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철강재 사용 환경은 과거보다 더 세밀해지고 높은 품질을 요구하고 있으며 최종 수요가들은 보다 더 쉽게 사용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철강재를 가공하는 입장에서는 보다 높은 치수정밀도와 품질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그만큼 지속적인 투자와 숙련도까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모든 사실과 여건들을 종합해 보면 스틸서비스센터들 스스로 가공비의 적정 수준을 세우고 이를 지켜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여러 측면에서 능력이 떨어지는 일부, 소형 SSC들이 이에 동참하고 지켜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주류가 이를 지켜준다면 분명 실현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연말 또 다시 경인지역 열연SSC들을 중심으로 가공비 인상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헛수고에 그치고 말았다. 그 원인은 당사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공급 과잉, 능력 과잉의 시장 환경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길은 원칙과 기준을 지키는 것이다. 단순히 SSC들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