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KS(한국산업표준) 미인증' 철강재 수입이 국내 건축물 공사 현장에 곳곳 스며들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이 만연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강당 붕괴,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 등을 겪으면서 얻은 뼈아픈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량 건축자재 사용과 결함 등 건축 안전을 잘 살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참사를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 비KS제품, 불법인데 강도까지 10% 약해
24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H형강과 철근 총 수입량은 각각 42만8898톤과 48만6473톤으로 집계됐다. 두 품목 군에서 중국산 유입이 가장 뚜렷했다. 중국산 H형강 수입은 12만톤 수준으로 전년보다 86% 늘은 양을 기록함과 동시에 전체 수입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5%에서 30%까지 확대됐다. 중국산 철근의 경우도 23만톤 유입됐다. 전년보다는 12.9% 증가했고, 점유율 역시 32.3%에서 46.3%로 올랐다.
수입 증가보다 더 큰 문제는 KS인증이 없는 부적합 철강 제품이 국내로 유입돼 건설 안전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 베트남, 바레인 등으로부터 H형강과 철근을 수입한다. 특히 일본과 중국이 주요 수입국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수입 철강재들은 JIS(일본공업규격)이거나 기타 규격이다. 특히 H형강류는 JIS SS400와 SS490 규격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요구하는 품질 확인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다.
KS 인증을 받지 않은 H형강을 사용하면 건축물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화학성분 상으로 KS 인증제품은 탄소당량 등 기준이 명확하다. 이와 달리 JIS의 경우는 탄소(C), 규소(Si), 망간(Mn) 성분의 상한치 규정 자체를 별도로 두고 있지 않아 성분 규정에는 부적합하단 평가다.
겉으로는 비슷해도 기계적 성질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KS와 JIS는 스펙 표기법부터 다르다. KS는 항복강도(재료가 변형되지 않고 견디는 강도)를, JIS는 인장강도(끊어지지 않고 견디는 강도)를 붙인다. KS 인증을 받은 ‘KS SS275’의 항복강도는 275㎫이지만 'JIS SS400'의 실제 항복강도는 235㎫다. 따라서 항복강도는 KS SS275가 JIS 기준 대비 40㎫ 더 높다. 인장강도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우수하다. 4m 두께의 기둥을 세울 때 KS 인증을 받은 H형강은 110.5톤까지 견딜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H형강은 98.7톤까지만 버틸 수 있다. 쉽게 말해 단위 면적 당 견딜 수 있는 정도가 10% 약하다는 뜻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건축과 토목 분야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며 투자비에 대한 경제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않은 건물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싸고 질좋은 건물을 지어 공급하는 ‘미션 임파서블식’ 건축 과정을 지향하다보니, 소재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거주자에게 안전 등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등 대형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저품질 H형강이 지목되자 건축 구조물의 코어(CORE)를 잡아주는 H형강에 대한 품질 요구가 높아졌다. 현행법상 2018년부터는 국내 토목, 건축 설계에는 KS 인증을 받은 H형강만을 사용해야한다.
그러나 비KS 인증 H형강들은 KS 인증 위변조나 간단한 시험성적서를 활용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는 채 전국으로 흩어지고 있다. 특히 KS와 JIS규격을 혼용하거나 상대적으로 감리가 부실한 소규모 빌라 공사와 공장 건축 현장 등 사각지대로 투입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편법 수입, KS인증 자격 박탈…지뢰밭 투성
KS 인증을 받지 않은 값싼 중국산 H형강 제품에 ‘마구리판’으로 불리는 철판(엔드 플레이트)을 양 쪽에 용접한 후 ‘기타 철구물’로 수입하는 편법 사례도 발생했다. 국내로 수입을 마친 후에는 마구리판을 떼어내고 H형강으로 용도 제멋대로 바꿔 판매하려는 목적에서다. 이는 불법 행위임은 물론 제품 용도 외 사용으로 구조물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시공 시 오차가 발생해 건물 붕괴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KS 인증이 있어도 문제다.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과 오만 등 철근 제품은 KS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균등한 품질을 보장하기 어려워서다. 지난 2015년 중국 태강강철의 KS인증 자격 박탈과 KS 인증 획득 후 원가에 맞는 저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KS 인증으로 수입산을 차별할 근거는 사라졌지만 품질과 관련한 오해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 "철저한 관리체계와 구조적 개혁 있어야"
구조물 붕괴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비KS제품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설계,시공,감리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저가 발주, 수주를 막는 구조적, 제도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식적 개혁도 촉구했다. 국내 H형강 제조사들은 건축물 붕괴로부터 안정성을 확보한 제품들을 개발·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내화·내진에 특화된 H형강 제품 등을 개발해 국가연구개발 우수 성과도 남겼지만 소재에 대한 안전 의식 부족으로 쓰임이 제한돼 답답함은 커지고 있다.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기술들이 개발 후 묵혀지고 있어서다. 좋은 발주자도 필요하고 저가 수주는 안 하겠다는 결기 있는 건설사도 필요하단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도 불량자재를 사용한 건설 현장에 대해 안전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11월과 12월에는 전국의 2천여 곳이 동절기 대비 건설 현장 안전 점검을 받았다.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해빙기 건설현장 안전 합동점검도 곧 전개될 예정이다. 작년 점검 결과에서는 전국 1972개 건설현장에서 총 4681건의 지적사항이 적발됐고,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라 부실벌점 부과 대상 16건, 과태로 부사 대상 32건, 시정명령 2451건, 현지시정 2182건의 부실 사항이 확인됐다.
국토부는 건설 현장에서 양질의 건설용 강재가 반입·사용될 수 있도록 철근‧ H형강‧강판 및 PC 강선 등에 대한 KS 인증 또는 비KS 인증 자재 확인과 품질시험·검사 및 기록물 보관 상태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민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건설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년 품질기준 미달 사례가 발생하고 있고, 검증된 자재 사용 의무화가 시급한데 제대로 대처가 안되는 점도 문제다”라면서 “불량자재에 대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한층 고도화해 안전과 품질 경쟁력에서의 대한민국 건설 경쟁력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