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다시 뛰는 포스코 “POSCO the Great” ①

<기획>다시 뛰는 포스코 “POSCO the Great” ①

  • 철강
  • 승인 2014.04.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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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방정환 jhb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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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보국’ 정신으로 국가 산업ㆍ경제 발전 토대 마련

 포스코가 지난 1일 창립 46주년을 맞았다. 국내에 이보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철강기업이 존재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철강산업 역사에서 포스코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자본과 기술, 경험은 물론 부존자원마저 없어 일관제철소의 건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꿈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고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 사업의 목적으로 일관제철사업이 국가적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여기에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비롯한 포스코인들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포항 영일만에 종합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했고, 잇달아 광양만에 세계 최신예 최대 제철소를 건설했다. 이를 두고 ’영일만과 광양만의 신화’라고 이야기 한다.

 포스코의 성공신화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 되어 현재의 경제대국, 산업대국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이러한 신화의 중심에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불굴의 개척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 이 땅에 철강산업의 토대를 닦다
   
 철강불모지였던 이 땅에 고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발전을 위해 일관제철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당시 대한중석 사장으로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였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일관제철소 건설의 특명을 부여했다.

 하지만 1968년 일관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자본은 물론 경험이나 기술, 자원마저 없는 상황에서 창립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의 출발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종합제철 사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우리나라 일관제철소 건설계획은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때 당시의 박태준 사장이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제철소 건설자금으로 전용한다는 이른바 ‘하와이구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후 일본 정·재계 주요 인사들을 설득하여 결국 박태준 사장은 대일청구권자금 7,370만 달러와 일본 은행차관 5,000만 달러를 합한 1억2,370만 달러를 들여올 길을 뚫었다.

 수도 없는 난관의 연속이었지만 1970년 4월 1일에 온 국민의 성원 속에 조강연산 130만톤 규모의 포항 1기 설비를 착공하게 됐고 이어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에서 첫 쇳물을 생산했다. 역사적인 이날을 기념하고자 매년 6월 9일을 ‘철의 날’로 지정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포항제철소 1기 착공식의 모습

   
 ◇ ’製鐵報國’ 실천으로 국가경쟁력 기틀 마련
    
 지금도 포스코와 연상되는 말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철보국(製鐵報國)’과 ‘우향우’ 정신이다. 이 땅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경쟁력 있는 산업의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조국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제철보국’ 정신은 포스코의 설립 근거다.

 또한 제철소 건설에 성공하지 못할 때는 제철소 건설부지에서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우향우 정신’은 선조의 피 값이라 할 수 있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하는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는 민간기업으로 전환된 포스코지만, ‘제철보국’과 ‘우향우’ 정신은 건설 초기 철강역군들을 하나로 만드는 공동의 좌우명이면서도 여전히 포스코의 DNA로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포스코인들의 투철한 소명의식은 한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생존전략은 중화학공업 육성과 대외 수출 진흥이었으며 이러한 전략의 성공 여부는 철강산업의 발전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조업 개시 이래 좋은 품질의 철강재를 공급함으로써 조선, 가전, 자동차 등 국가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는 고부가 제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 특히 중화학공업에 투입되는 기초소재를 공급해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1차 산업 중심에서 2차 산업으로 전환되고,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변모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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