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창립 45주년> “철강을 넘어 글로벌 No.1 기업으로”(1)

<포스코 창립 45주년> “철강을 넘어 글로벌 No.1 기업으로”(1)

  • 철강
  • 승인 2013.04.01 08:30
  • 댓글 0
기자명 방정환 jhbang@snm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준이즘’으로 시작된 韓國 최초 ‘일관 제철사업’
한국 경제 발전 뒷받침하는 버팀목 역할
製鐵報國 실천으로 국가경쟁력 기틀 마련

 포스코가 올해로 창립 45주년을 맞았다. 이보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국내 철강기업이 존재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철강산업 역사에서 포스코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자본과 기술, 경험은 물론 부존자원마저 없어 일관제철소의 건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꿈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을 비롯한 포스코맨들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영일만에 종합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했고 잇달아 광양만에 세계 최신예 최대 제철소를 건설했다. 이를 두고 ‘영일만과 광양만의 신화’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포스코의 성공신화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 되어 현재의 경제 대국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러한 신화의 중심에는 ‘철강왕’으로 불린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과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불굴의 개척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 이 땅에 일관제철의 토대를 닦다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박 명예회장은 이후 경제인으로 변신해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되어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바꾸었다. 이 같은 박 명예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한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대한민국 최초 종합제철소의 건설의 특명을 부여했다.

 1968년 일관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자본은 물론 경험이나 기술, 자원마저 없는 상황에서 창립된 포스코의 출발은 결코 순탄할 수 없었다. 미국 등 5개국 8개사로 구성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 등에서 한국의 종합제철 사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일관제철소 건설계획은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그때 당시 박태준 사장은 하와이에서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제철소 건설자금으로 전용한다는 ‘하와이구상’을 떠올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일본으로 건너가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설득에 나섰다. 결국, 박태준 사장은 대일청구권자금 7,370만달러와 일본 은행차관 5,000만달러를 합한 1억2,370만달러를 들여올 수 있었고 1969년 8월 제3차 한일각료회담에서 일본정부가 종합제철 건설사업을 지원키로 함으로써 포항제철소 건설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1970년 4월 1일에 온 국민의 성원 속에 연산 130만톤 규모의 포항 1기 설비를 착공하게 됐고 이어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에서 첫 쇳물을 생산했다.

 

▲ 포항제철소 1기 준공식의 모습

  
 ◇ 製鐵報國 실천으로 국가경쟁력 기틀 마련
    
 지금도 포스코와 연상되는 말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철보국(製鐵報國)’과 ‘우향우’ 정신이다. 이 땅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경쟁력 있는 산업의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조국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제철보국’ 정신은 포스코의 설립 근거다.

 

 또한 제철소 건설에 성공하지 못할 때는 제철소 건설부지에서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우향우정신’은 선조의 피 값이라 할 수 있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하는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제는 민간기업으로 전환된 포스코지만, ‘제철보국’과 ‘우향우’ 정신은 건설 초기 철강역군들을 하나로 만드는 공동의 좌우명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포스코의 DNA로 각인되어 있다.

 최고경영자로서 박태준 명예회장은 제철보국의 기업이념과 소명의식, 책임정신과 완벽주의, 철저한 투명경영, 인간존중과 기술개발의 경영이념을 솔선수범의 실천으로 보여줬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비효율과 부실의 여지를 막고자 조직의 자율과 책임문화 정립에 중점을 두었고, 이러한 책임의식이 자연스럽게 완벽주의로 연결됐다. 1977년 포항 3기 설비가 공기지연으로 고전하고 있을 때도 발전송풍설비 구조물에서 부실공사가 발견되자 80% 정도 진행된 상태였지만 “부실공사는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며 즉각 폭파한 일은 완벽주의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 포항1고로 화입 장면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철강금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